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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장보고정신 구현- 김희문 완도문화원장

기사입력 2004.05.04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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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해진 주민이 본 장보고 현양사업
    지방 현지에 전해져 온 청해진 이야기①
                          
                     김 희 문    완도문화원 원장 <사진>
     1. 청해진의 장보고
       1) 청해진의 설치
    청해진이 왜 완도에 설치하게 되었는가? 하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완도항의 관문인 동망산에 제주도 내해인 완도 앞 바다를 조망(眺望)할 수 있는 탑이 있었으면 직접 관찰해 보고 저절로 알게 돼서 좋으련만" 하고 생각해 왔었는데 죽청리 앞산 중뫼(中山)에 장보고 동상 탑을 세운다고 하니 아쉬운 감이 있으나 다행한일로 생각한다.
    해발 50m인 중매에 높이30m의 탑을 세운다면 해발 고80m가 돼서 완도에서 60리 떨어진 청산도 앞 바다를 충분히 관망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완도근해 앞 바다를 지나가는 배는 전혀 보이지 않아 관찰할 수는 없으나 우리 나라의 남해 연안을 침범하는데 반드시 거쳐야하는 완도와 청산도 사이를 통행한 모든 배는 한눈에 든다.
    어차피 완도근해로 바짝 붙어 내왕하는 외래 선은 해변산의 연대(煙臺)의 신호로 알 수 있는 방법이 있기 때문에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리고 육지연안을 항해하는 국내선은 군외면 달도 망뫼산에서 도맡으면 문제될 것이 없다.
    청해진은 해양에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곳에 설치돼서 해적선을 퇴치하고 외양선 통행을 통제하는 해양 통제소 역할을 하면서 국제무역항 구실을 제대로 수행했던 것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그대로이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좋은 집터라고 하면 산을 등지고 물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라고 하는 관행으로 경치와 연관지어 생각해 왔었다. 보편적으로 집터는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어야 겨울에 따습고 여름에 서늘하며 뒤에 산이 있어 북풍을 막아주고 앞에 강이 있어 시원한 강바람이라도 불어준다면 더없이 좋은 이상적인 집터라고 한다.  그렇지만 인류의 역사적 변천은 그렇게 낭만적인 것만은 아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생존경쟁의 침략전쟁에서부터 이념전쟁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크고 작은 전쟁이 일어났었던 것이 인류의 역사이다.
    장보고 청해진의 설치도 그와 같은 전재의 한 편린인 것으로 장보고가 완도주변의 많은 섬 주에서 하필 완도를 택한 데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뒤에 높은 산이 있어 침노하는 외적을 막아주고 앞에는 바다가 있어 역시 외적을 막아주고 편리한 교통을 제공해줄 뿐 아니라, 산업면에서도 많은 이익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런 점으로 고려해 본다면 경관의 수려함도 우리의 생활면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는 것이다.
    청해진의 완도 설치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섬의 중심부에 644m의 높은 상왕산이 있었기 때문에 그 산자락의 동학(洞壑)으로 해양을 누비고 다닐 수 있는 청해진 선을 만들어 동남아 해상을 주름잡아 해상왕국을 이룩했다는 것은 지금 장도남부 해안에 남아있는 목책(木柵)으로 사용되고 있는 원목열의 아름드리 황장목 잔해가 이 사실을 입증해주고 있는 것이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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