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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기고] 향토사학가 추강래

기사입력 2004.04.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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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자 기고]
    친구의 죽음 앞에


    식목일 행사장에서 그 친구를 보았다. 멀리 있기에 손가락으로 'V'자를 만들어 반가움을 표시했다. 그 친구 특유의 싱그러운 웃음을 입가에 머금고 인사를 보내 왔다. 산을 오르는 무리들 속에 섞여 친구도 사라졌다.
    그것이 친구를 보았던 마지막이 될 줄을.......                            그 친구가 산을 오르다 실족하여 홀로 우리 곁을 떠났다는 소리를 들었다. 한치 앞을 분간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 삶이라고 하지만 이건.......                                                                              늦은 시간에 친구의 빈소를 찾았다. 얼마 전까지 함께 있었던 동료들이 슬픔을 이기지 못한 채 삼삼오오 모여 있다.
    동생의 소식을 듣고 출장 갔던 친구의 형이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들어선다. 친구와 많이도 닮았다. 눈 속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이 가득하다.                                                            세상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 같은 허탈한 모습이다. 동생의 죽음을 맞은 형의 슬픔에 폭과 깊이는 측량할 수 없을 것 같다.
    옛 사람들은 임종시에 가장 보고 싶은 사람이 형제라는 말을 들었다. 힘들었던 가난의 세월을 함께 넘었던 피붙이 이기에 그랬을 것 같다.                                                                                    옷도 형이 입던 것을 동생이 내려 입고, 책도 언니가 보던 것을 동생이 보았고, 좁은 방에서 몇 형제가 함께 뒹굴며 살아왔고, 방이 추워 이불하나를 서로 빼앗아 가면서 살아 왔기에 그랬을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 작은 할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읍내에 사셨던 작은 할아버지 지만 장지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시골 마을로 결정되었다. 형인 나의 할아버지는 '상여가 동네로 온다는데 나와 보실 겁니까?' 하는 물음에 '동생이 죽었는데 무슨 좋은 일 있다고 나가겠느냐고 시큰둥하게 대답하였다'                                               상여가 마을 앞을 통과하고 있는데 멀리서 할아버지의 뛰어오는 모습이 보인다. 한쪽 발은 신발까지 벗겨진 채로 동생의 이름을 부르면서 금방이라도 넘어질 듯 위태하게 달려온다. 희로애락의 늪에서 벗어난 연세로 알았는데......
    상여를 붙잡고 보내지 않으려는 듯 몸부림을 치는 모습이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을 울리고 말았다.
    형은 아버지를 대신한다고 하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자식은 부모가 죽으면 땅에 묻지만, 부모는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였다. 동생의 죽음 앞에 저렇게 슬퍼하는 모습이 바로 우리 부모의 모습이 아닐까?
    그렇다면 지금 우리시대에서 양육시키고 있는 자녀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해가고 있을까?
    교육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려서부터 형제가 함께 살지 못하는 가정이 많다. 설혹 한집에 함께 살더라도 같은 이부자리를 사용하지 않는다. 옷이나 학용품을 물려받는다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다. 철저한 나 한사람 위주의 사고방식으로 키워지고 또 키우고 있는 것 같다.
    미래의 우리 사회를 책임져야할 청소년들이 내 주위를 돌아 볼 줄 모른 채 자란다는 것은 우리들의 미래가 아름답지 않을 것 같다.
    떨어져 있지만 서로의 안부를 묻고 확인하는 형제 자매, 한 달에 한번이라도 할아버지 할머니를 찾아 뿌리를 확인하면서 정을 심고 가꾸는 가정, 이러한 가정들이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하는 모습이 아닐지..........
    이승에서의 인연이 너무 짧은 친구의 죽음을 보면서 그 길이 우리들이 피해갈 수 없는 길이기에 언젠가 만날 그 때에는 'V'자가 아닌 두 손을 굳게 잡고 반갑게 흔들 것을 기대해본다.


    향토사학가 추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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