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
인사]농협중앙회 전남본부01,03일자[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 ◇ 부본부장▲ 경영지원부 부본부장 이기선 ▲ 경제사업부 부본부장 노명하 ◇ 지부장▲ 무안군지부 조형규 ▲ 해남군지부 박서홍 ▲ 담양군지부 이종기 ▲ 목포신안시군지부 장은석 ▲ 순천시지부 서재식 ▲ 영광군지부 한상옥 ▲ 진도군지부 이인환▲ 영암군지부 서옥원 ▲ 완도군지부 김남승 ▲ 장흥군지부 강형구 ▲ 함평군지부 김충현 ▲ 화순군지부 이명만 ▲ 강진군지부 김선웅 ◇ 지역본부 및 시군지부단장▲ 농촌지원단장 박성범 ▲ 경영기획단장 임정모 ▲ 경영기획팀장 임흥빈 ▲ 상호금융단장 조상명 ▲ 축산사업단장 신승욱 ◇ 시군지부 ▲ 구례군지부 단장 김윤철 ▲ 담양군지부 단장 추연훈 ▲ 순천시지부 단장 곽봉래 ▲ 영암군지부 단장 최용면 ▲ 무안군지부 단장 노빈섭 ▲ 완도군지부 단장 채상원 ◇ 검사국▲ 검사역 채경권 박동주 ◇ 농협은행 전남영업본부▲ 전남영업부 부장 김회천 ▲ 광양시지부 부지부장 조정래 ▲ 나주시지부 부지부장 엄준현 ▲ 순천시지부 부지부장 김원일 ▲ 신여수지점장 고성신 ▲ 신목포지점장 설준홍 ▲ 목포2호광장지점장 김진갑 ▲ 동순천지점장 김판욱 ▲ 북순천지점장 김평태 ▲ 나주혁신도시금융센터장 김애숙 ▲ 여수센트럴지점장 한대웅 ▲ 동광양지점장 최양섭 ▲ 자유시장지점장 송종철 ▲ 벌교지점장 강대형 ▲ aT센터본사지점장 박윤숙<조영인 광주취재본부장, 서해식 동부취재본부장,해남 정정희기자, 강진 김송자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www.chjnews.kr 입력170105
-
임일태사진작가 한국 기네스북에 등재▲ 임일태 사진작가는 2011.5.15 최다 사진수상 대한민국 기록원에 등재(한국기네스북). [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 임일태사진작가는 2011.5.15 최다 사진수상 대한민국 기록원에 등재(한국기네스북)되었으며, 임작가의 자택에 들어서니 기념관이 연상된다. 필자가 지난 1998년 13시간 대한항공을 타고 포르투칼 리스본 해양엑스포에 김영진 전,국회의원과 고,차관훈 전,완도군수, 윤석민 전,완도군의회 의장, 황화국 전,문화원장과 함께 완도해양엑스포 유치단의 취재를 다녀오면서 느낀 해양엑스포현장의 각국 기념관이 떠 오른다. 여기저기에 사진과 수상메달, 상패, 세계각국의 우표 등이 필자를 반겨준다. 임일태 작가의 방에는 상장과 메달 그리고 연극이나 극장에서 볼 수 있는 옛날 전통 한복부터 예복과 잘 정돈된 사진기자재와 CD, 필름, 우표 등이 제습함 3곳에 나란히 체계적으로 보관되어 그의 33년 동안의 흔적이 사진작가인 필자의 가슴을 감동케 하였다. 임일태 작가와 이혜자씨의 집을 지난 2014년 12월12일에 방문하였다. 호남형의 훤칠한 키와 뛰어난 용무, 풍기는 기풍, 하지만 그는 지난2011년5월23일 3國3人 국제사진 전시회를 개최하는 기간 과로로 쓰러져 뇌경색으로 손과 발이 마비되에 시달리고 있지만, 부인의 헌신적인 간호로 현재 많이 호전되어 혼자 바깥나들이와 운전을 하며, 사진에 대한 강한 집념으로 세계사진작가협회 회원 PSA으로서 세계각국의 사진대회 심사위원으로 10여개국에서 초청받아 활동하고 있다. ▶ 사진을 시작하게 된 동기는? - 1981년 발간되던 여성잡지 ‘여원’에서 아내에게 서비스하는 남편을 주제로 사진 공모전을 하였는데 이때 ‘사랑맛 양념맛’으로 1등 당선되어 상품으로 14인치 컬러 텔레비전을 받은 것이 사진작가의 시작이었다. ▶ 사진에 영향을 준 사람은? - 작고하신 광주 최병오 선생님에게 사사를 처음 받았으며 지금도 선생님의 가르침‘사진은 발로 찍는다’란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 어떤 분야의 최고인지? - 59개국에서 2,352회 수상(대상, 금상, 은상, 동상, 가작, 장려, 특별상, 입선)이라는 놀라운 수상실적으로 지난 2011년5월28일 한국기네스북(한국기록원)으로부터 사진작가 최다 수상자 인증서를 받았으며, 2014년에는 세계기네스북(미국기록원)에 사진작가 최다 수상자 가등재를 하여 검수중에 있다. ▶ 3國3人 국제사진전을 개최하게 된 동기는? -3國3人 국제사진전은 2008년 세계사진작가협회 초청으로 루마니아를 방문하여 100점의 사진을 전시한 것을 계기로 지난 2011년5월23일부터 6월3일까지 전북도청 겔러리에서 본인의 주선으로 이루어졌으며 루마니아 사진작가협회 이사장인 스테판 토스(Stefan Toth)씨와 일본 히로시마 사진작가협회장인 다카시게 구마모토(Kumamoto Takashige)씨가 참여하여 각 나라의 고유 전통 민속과 창작 작품을 각각 40점씩 전시하였다. ▶ 기억에 남는 상은? - 국내 - 1991년 세계일보사 주최‘포토에세이’란 주제의 공모전에 대상을 받았다. (대나무의 성장에서 활용 후 소멸까지 의 이야기를 사진으로 편집한‘대나무의 일생’작품) 국외 - 2009년 핀란드 국제공모전에서 ‘창작분야-해녀, 자연분야-아름다운 이야기’로 금, 은상을 받았다. ▶ 애착이 가는 사진은? - 1년에 2-3개월의 한시적인 기회를 주는 학 사진을 20여년간 매일 학 서식지로 출근하여 얻은 20점이 세계 각국을 누비며 금, 은, 동을 안겨주었으며 원판이라 더욱 예지중지 한다. ▶ 사진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 - 사진전에 응시된 결과를 기다리는 즐거움이 긍정적인 사고와 생활의 의욕을 북돋으며, 온몸을 움직여야만 하는 사진공부는 때와 장소, 시간을 초월해야 하므로 항상 기대를 가지고 새로운 것에 대한 이해와 경험을 필요로 할 수 있게 하여 좋았고, 그러한 총합적인 일들을 헤쳐 나가야만 하는 삶과 인생에 자극제가 되어 부지런한 생활을 만들었다. ▶ 사진전에 대한 불공정 문제에 대한 견해는? - 모든 예술은 작가의 정신세계의 표현이기 때문에 옳고 그름의 문제 이전에 심사위원이 개인적인 예술성에 입각하여 평가되어지고 있지만, 기본적인 틀(기술적-구도, 황금분할, 여백, 주제표현)은 작품의 기본이기 때문에 객관적으로 평가되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 후학 양성은 어떻게 하는지? - 전주기전대학에서 사진학을 가르치며 우도 사물놀이 강의를 뇌경색으로 쓰러지기 전까지 하였다. ▶ 사진 이외에 다른 취미는? - 1957년에 시작한 우표수집 168개국 15,000점과 수석으로 형태석이나 인물상과 숫자가 박힌 돌이 일부 있으며, 소나무, 당 단풍, 모과, 철쭉, 동백등 분재 가꾸기이다. ▶ 부부 교사로서 근무기간은? - 같은 학교에서 만나서 결혼하였으며 본인은 26년, 아내는 30년하고 명예퇴직 하였다. 끝으로, 지금까지 수집하고 보관한 사진과, 우표, 수석, 분재를 후대에게 남겨 줄 수 있는 기념관에 2011 한국 기록원에서 등재된 내용과 2014 세계기네스북에 가등재 기록 작품을 보존하는데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 임일태작가 해외 금상수상 6매작품 - 石泉 -저작권있음 ▶ 임일태작가 프로필. 전주기전대학 사진 및 사물놀이 겸임교수 2014,04, 최다 사진수상 세계 기록원에 등재(미국기네스북)키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2011.5.15 최다 사진수상 대한민국 기록원에 등재(한국기네스북). 2010.10 세계사진작가협회 회원 PSA. 2011.5.23 한국, 루마니아, 일본 3국3인 초청전시회(120점). (사단법인) 한국 및 미국W.P.A 사진작가협회 회원. 미국W.P.A 국제사진대전 초대작가(심사위원). 한국사진작가협회 모델 촬영 지도위원. 2005년 스리랑카 국제사진전 심사역임. 2008년 루마니아, 마카오, 초대 사진개인전. 춘향, 호남, 영남 사진대전 초대작가.<石泉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www.chjnews.kr 입력20150125 수정20150130
-
김영진 장로 해돋는 마을 이사장 취임김영진 장로 해돋는 마을 이사장 취임 (사) 해돋는마을 김 영 진 이사장 [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 기독교장로회 부총회장 김영진(사진) 장로가 지난 4월9일 오전 노숙인 사역 단체인 (사)해돋는마을 2대 이사장에 취임했다. 임기는 2016년 4월까지 2년이다. 취임감사예배에서는 서울역광장 노숙형제와 함께하는 해오름잔치도 열린다. 김영진 신임 이사장은 5선 국회의원과 농림부 장관, 국회조찬기도회 회장과 국가조찬기도회 초대 회장 등을 지냈다. 현재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부회장과 국제사랑재단 대표회장, 한일기독의원연맹 공동대표, 세계한인교류협력기구 상임대표, 4·19혁명유네스코등재위 이사장, 광주대 석좌교수를 맡고 있다.<石泉김용환 대표기자, 서부 정완봉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www.chjnews.kr 입력20140628
-
강진군, 월남사지 담장 일부 확인강진군, 월남사지 담장 일부 확인 ▲ 강진 월남사지 [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출산 남쪽자락의 월남사지(月南寺址. 전남도 기념물 제125호) 발굴조사 중 절의 중심 구역을 추정할 수 있는 담장시설이 확인됐다. 월남사지 2차 발굴조사를 진행 중인 강진군은 2012년 시굴조사에서 확인된 후면 담장에 이어 전면과 동측의 담장 시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번 발굴조사는 3층석탑(보물 제313호)을 중심으로 남쪽과 동쪽 지역에서 이뤄졌으며 고려 후기 중창 시기의 건물지를 비롯, 그에 따른 배수시설과 계단시설, 보도시설, 담장시설 등이 확인됐다. 강진군은 이 가운데 배수시설을 건물 기단의 측벽으로 삼은 건물지가 중심에 배치돼 있는데, 이 건물지 하부에서 선대 유구가 확인돼 월남사가 여러 차례 중창과 보수가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출토유물은 월남사의 초창기를 알려주는 백제 기와를 비롯해 이후의 통일신라와 고려시대의 기와류가 계속 확인되고 있으며, 조선시대 기와류는 소량 확인되고 있다. 강진군은 이를 통해 진각국사 혜심(慧諶)이 창건이 아닌 중창을 했음을 알 수 있으며 월남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돼 신라를 거쳐 고려에 이르기까지 법등(法燈·석가의 가르침)이 계속 이어졌음을 확실히 밝힐 수 있게 됐다고 덧붙였다. 한편, 강진군 관계자는 "문화재청과 협의해 중심 사역(寺域) 확인에 따른 체계적 연차 발굴조사와 정비계획을 수립, 월남사지의 성격 파악과 유적 보존에 만전을 기할 방침"이라고 말했다.<강진 신재희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20130910
-
토착비리 척결 및 투명한 정의사회 구현은 검찰 몫토착비리 척결 및 투명한 정의사회 구현은 검찰 몫 공금횡령, 유용, 배임, 직무유기, 사문서위조 의혹 등 [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은 전남 완도군 B협의회에 대한 공금횡령, 유용, 배임, 직무유기, 사문서위조 등 의혹사건에 대해 토착비리 척결 및 투명한 정의사회 구현을 위한 수사에 들어가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완도군 B협의회가 지자체의 보조금을 부당 사용했다는 의혹 보도가 지난해 본지보도 및 서울 시민일보 2013년 2월 5일자 사회단체 보조금은 '단체장 쌈짓돈'이라는 보도이후 완도경찰은 일부 횡령부분에 기소의견으로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에 송치하였다는 것. 지난해부터 B협의회 보조금 의혹 관련 소문이 일파만파 무성했던 인건비를 상시 근무하지 않은 자에게 보조금 지출과 회장의 개인식비를 지출하는 등 군협의회장이 보조금 카드 과다지출 등 감사보고 사문서위조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는 지역여론이다. 광주지검 해남지청은 지난 2010년 완도군 W사무소에 근무한 J씨는 회계담당업무를, C씨는 읍장으로 근무하면서 읍사무소로 전도된 예산에서 발생한 이자 1,300여만원을 횡령해 사용했다가 지난해 전남도 감사에 적발되어 검찰에 고발된 사건을 업무상 배임횡령죄 등으로 기소했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형사단독, 재판장 최영각 판사)은 6월12일 오전 해남지원 1호 법정에서 열린 재판에서 완도군청 J모씨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당시 완도읍장이었던 C모씨에게는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각각 선고했다. 이에 B협의회의 2010년도 보조금 1명 인건비 960여만원이 책정되어 직원 2명이 15일씩 상근하며 적은보수로 나누어 받고 봉사정신으로 중앙협의회 직원 근무지침에 따라 근무를 하였다. 이후 2명이 사직하고 2011년도 보조금 2명 인건비 1,800여만원이 책정되었으나 사무국장은 상근하지 않고 간사역시 공백기간이 있었음에도 근무한 것처럼 하여 보조금을 지출한 의혹과 함께 감사의 부적정 감사의견으로 재감사를 받아야 함에도 적정 감사보고서로 사문서가 위조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로 검찰은 사실확인에 나섰다는 것. 한편, 완도군 B협의회의 공금횡령, 유용, 배임, 직무유기, 사문서위조 의혹 등에 대해 박근혜 정부의 토착비리 척결의지에 광주지방검찰청 해남지청의 “투명한 정의사회 구현은 검찰 몫”이라는 대다수 지역주민들의 여론으로 그 귀추가 주목된다.<기동취재>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경제신문 www.wandonews.kr/www.wandonews.co.kr 입력20130715
-
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대법서 결국 중형청산가리 막걸리, 부녀 대법서 결국 중형 자백 신빙성 인정…1심 뒤집은 2심대로 무기징역·징역 20년형 [청해진신문] 세상을 떠들석하게 전남 순천판,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에 부녀 둘의 불륜 관계를 아내가 알자 살해한 사건이 4년여 법정 공방속에 1심 무죄 → 2심 유죄 → 대법원은 15일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들에게 아버지는 무기징역, 딸은 20년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청해진신문이 지난 2009년9월2일자 보도한 광주지검 순천지청 정형도 검찰수사관(현재 정형도 법무사 운영)은 미궁에 빠져 영원히 범인을 잡지 못할 수도 있었던 사건을 공직자로서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조사한 끝에 고흥판 '살인의 추억'사건을 8년만에 범행을 밝혔다. 또한, 순천판 '청산가리 막걸리'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등 두건의 살인사건 피해자의 원혼을 달래고 슬픔에 빠져있던 그 유가족의 한을 풀어주게 되었다.<石泉> 광주지검 순천지청(당시, 지청장 차동언)이 8년전 전남 고흥에서 발생한 사건과 최근 순천 판 청산가리 막걸리사건이, 사실상 미궁에 빠진 살인사건을 강남석 검사와 담당수사관 정형도씨의 치밀한 수사로 해결하는 개가를 올렸다. 광주지방검찰청순천지청에서 미궁에 영원히 갇힐 두건의 살인사건을 탁월한 수사역량을 발휘해 해결한 정형도 수사관은 광주지검에 근무당시 법무부장관 업무유공 표창을 받았다. <중략>...... 살인사건 내용은 지난 2009년 7월6일 오전, 전남 순천의 한 시골마을에 살던 최아무개(사망 당시 57살·여)씨는 희망근로사업장으로 출근하다 “일 나갈 때 가져가라”던 남편의 말이 떠올라 막걸리 두 병을 챙겨 길을 나섰다. 출근하자마자 목이 칼칼했던 최씨는 동료들과 함께 막걸리를 나눠 마셨다. 순간 최씨와 동료 한 명은 그 자리에서 사망했고, 다른 두 명은 바로 토해내 간신히 목숨을 구했다. 최씨 등의 사인은 ‘청산염 중독에 의한 심폐정지’. 누군가 막걸리에 청산염을 탔던 것이다. 경찰은 곧장 수사에 나섰으나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좀처럼 실마리를 찾지 못하던 검찰은 엉뚱한 곳에서 사건 해결의 단서를 잡았다.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같은 달 26일 최씨의 딸 백아무개(28)씨는 강간을 당했다며 한 남성을 고소했는데, 피해 특정을 못하고 진술을 계속 번복하다 허위고소였다고 실토를 한 것이다. 백씨는 그러면서 “사실은 나와 아버지가 청산염을 구입해 어머니를 죽였다. 경찰 수사에 혼선을 주려고 허위고소를 했다”고 범행 은폐 사실을 순순히 털어놨다. 아버지 백아무개(62)씨는 딸 백씨가 초등학교 다닐 무렵부터 성추행을 한 뒤 지속적으로 딸과 성관계를 가졌다. 딸은 2007년에는 친부를 알 수 없는 아들을 출산해 해외 입양을 보내기도 했다. 최씨도 부녀간 ‘부정’을 알게 됐고, 이 문제로 ‘부녀와 어머니’ 사이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졌다. 최씨는 특히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남자들과 스스럼없이 성관계를 갖던 딸에게 “남자관계가 문란하다”며 여러 차례 꾸짖었고, 감정이 쌓인 부녀는 청산염을 넣은 막걸리를 마시게 하는 방법으로 최씨 살해를 모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철저한 수사로 부녀에게 자백을 받아 존속살해와 살인 등의 혐의로 이들을 재판에 넘겼다. ‘부녀 치정이 부른 비극’으로 귀결되는 듯 했던 사건은 법정에서 돌변한 부녀의 태도로 또한번 반전을 맞았다. 이에 부녀 모두 “검찰 추궁으로 허위자백을 했다”고 주장한 것. 1심을 맡은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부녀의 자백에 의한 진술의 증거능력이 낮다”며 살인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인 광주고법은 “검찰에서의 자백이 신빙성이 있다”며 1심을 뒤집고 백씨와 딸에게 각각 무기징역과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한편, 광주지검 순천지청(당시, 지청장 차동언, 수사관 정형도)의 기소로 4년여 법정공방 속에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 대법관)도 15일 피고의 상고를 기각하고 이들에게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石泉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20120315
-
슬로시티 청산도 학생들의 반란슬로시티 청산도 학생들의 반란 아름다운 청산도 중학생 전시회 사진1> “아름다운 청산도, 그 안에 사람 있었죠” 청해진신문] 사진작가 홍진선 목사로 부터 카메라 첫 경험을 시작으로 시와 함께 청산도의 아름다움을 표현해 사진찍기를 배워 사진으로 담았다는 슬로시티 청산도 학생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사진전시회 여는 슬로시티 청산도 중학생들은 먼저 시를 읽었어요. 사진을 찍기 앞서 아름다움을 어떻게 표현하는지 배워야 했거들랑 요...... 유채꽃이 노랗게 피어 전국의 관광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새 봄이 한창인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10대들이 펼치는 사진전이 개막했다. 1970년대 인구 13,000여명이 던 청산도는 청산중학교와 청산동중학교 2개의 학교에 약1,000여명의 학생들이 다녔는데 모도, 여서도 등 인근 도서를 포함해 현재 인구 2,300여명으로 줄었다는 것. 인구가 줄어들고 젊은이 들은 도회지로 생활전선을 찾아가다 보니 학생들이 적어 청산중학교와 청산동중학교가 합병한 1~3학년 청산중학교 전교생은 50명도 안되는 초미니 중학교로 전략하고 말았다. 이런 와중에 청산중 사진반 학생 8명은 올해 슬로시티 축제 개막일인 8일 청산농협에서 섬 안의 풍경과 인물을 담은 사진 129점으로 전시회를 열었다는 의미는 대도시 중학교 학생들이 전시회를 여는 것보다 몇 백배의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다. ‘청산도보다 더 아름답다’는 전시 주제는 학생들이 주민들을 인터뷰한 뒤 풍경보다 아름다운 사람을 보여주자는 뜻으로 정했다. 전교생 42명 가운데 고병준·곽영준·김수영(2학년), 김은영·양유준·정소령(3학년) 등 6명이 출품했고 올 졸업생 양서진(전남제일고1)·임다빈(서울영상고1) 등 2명도 참가했다. 사진전은 5월 말까지 이어진다. 저마다 2,000여장의 습작 가운데 10여장만을 엄선해 내놓은 사진들은 뭍사람한테는 청산도의 수려한 풍광을 보여주고, 섬사람한테는 고향을 발견하는 기쁨을 안겨줄 만하다. 이들은 지난해 4월 방과후 교육 활동으로 사진반을 시작했다는 것. 대부분 카메라를 만져본 적조차 없는 초심자들이었다. 인천을 떠나 이곳에 정착한 사진작가 홍진선(46) 목사한테서 200시간 넘게 배웠다. 김수영(15)군은 카메라를 처음 들었을 땐 무척 떨렸다며 “선생님이 한동안은 사진 대신 시를 가르쳐 무척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청산도 모범개인택시 운전자 김주환씨에 따르면 청산도를 관광차 둘러보고 한눈에 반해 정착했다는 특수목회자 홍진선 목사(사진작가)는 학생들이 아름다운 풍경을 일상적으로 보면서도 느끼지 못하면 표현하기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고 맨 먼저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열어주려고 시를 읽도록 했다는 것. 그런 다음에 눈이 열리자 전문가용 필름카메라 8대를 빌려와 사진의 원리와 카메라의 기능을 하나하나 가르치고 인터넷 누리집에다 카페 ‘청산중 사진학교’(cafe.naver.com/vwiblue)를 열어 품평도 나누어 청산도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다고 홍 목사를 칭찬했다. 사진2>사진전 여는 완도 청산중 학생들 양유준(16)군은 “슬로길을 걷겠다고 사람들이 밀려드는 것을 보면서도 무덤덤했는데 사진을 찍으며 섬 구석구석을 가보고 이렇게 멋진 곳이구나 하고 새삼 감탄했다”고 말했다. 사진찍기를 통해 학생들은 조금씩 시야가 트이며 달라져 사진을 알기 전에는 섬 밖으로 뛰쳐나갈 궁리밖에는 없던 학생들이 이제는 고향을 떠나도 반드시 다시 돌아오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한편, 홍진선 목사(특수목회 사역)는 청산도는 한국적인 선과 색이 그대로 남아 있는 섬이라며 앞으로 5년동안 사진반 학생들을 길러 청산도의 역사·문화·인물·경관 등을 10대들의 눈으로 사진을 통한 영상으로 영원히 보관하도록 지도하겠다고 말했다. <石泉 김용환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 www.wandonews.co.kr/ 입력 20110408-14
-
국민권익위원회의 경찰 수사관련 고충민원처리 사례국민권익위원회의 경찰 수사관련 고충민원처리 사례 원문보기 클릭 http://www.epeople.go.kr/jsp/user/pc/pccase/UPcCaseView.jsp 경찰 수사 관련 고충민원 <수사 · 지연 거부 등> ■ 수사 지연 방치 이의 ■ 사건 접수 거부 <편파 부실 수사> ■ 재수사 진정 ■ 편파수사 조사 ■ 부실한 증거 조사 <적법 절차 위반> ■ 피의자 권리 미고지 ■ 현행범 체포 이의 ■ 불심검문 절차 위반 ■ 피의자 석방 지연 <피의자 인권 침해> ■ 경찰 장구 과잉 사용 ■ 미성년 피의자 인권 침해 ■ 피의자 의료권 침해 ■ 피의 사실 언론 보도 피해 <피해자 등 보호 소홀> ■ 피해자 신변 · 정보 보호 소홀 ■ 범죄신고자 정보 누설 <직무 태만·무례 행위> ■ 업무 인수인계 부실 ■ 수사 결과 등 미통지 ■ 경찰관 반말·욕설 • [수사 · 지연 거부 등 - 수사 지연 방치 이의]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 신청인은 2007. 2. 17. 심야에 주점에서 술을 마시다 다른 손님들로부터 폭행을 당하여 6주간의 치료를 요하는 중상을 입었으나, 피의자의 인적사항이 일부 확인됨에도 경찰이 피의자를 검거치 않고 사건 수사를 지연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조치를 하여 달라. 2. 피신청인 의견 피의자 인적사항 파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인사이동으로 수사담당자가 변경되어 인수 담당 수사관이 한꺼번에 많은 사건을 인수받아 처리하면서 수사가 지연되었다. • 고충민원 처리 • 피의자는 2007. 6. 26. 지명수배(기소중지)된 후 같은 해 2007. 7. 2. 다른 사건으로 구속되어, 서울중앙지검은 2007. 7. 12. 피신청인에게 2007. 8. 10. 까지 수사하여 송치할 것을 지휘하였으나, 담당 수사관이 2007. 10. 29.까지 일체의 수사를 하지 않고, 검사의 연장지휘도 받지 않은 채 추가 수사 없이 3개월 이상 부당하게 사건수사를 지연시켰음이 확인되어 피신청인(OO경찰서장)에게 담당 수사관에 대한 경고 등 적절한 조치를 이행하고, 향후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시정권고 함. • [수사 · 지연 거부 등 - 사건 접수 거부]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은 자신이 운영하는 식당 배달원이 수금한 식대와 오토바이를 가지고 도망하여 고소하고자 하였으나, 경찰이 배달원의 이름과 휴대전화번호만 알고 주민등록번호 등을 모른다면 고소할 수 없다며 신청인을 돌려보냈다. 2. 피신청인 의견 고소장은 피고소인을 특정할 수 있을 때 고소장을 작성하여 제출해야 하는 것으로 신청인과 같은 경우는 진정서를 제출해야 하며, 진정을 하려면 증거자료가 필요한데 신청인이 미처 준비하지 못 했다 하여 피해금을 산정할 수 있는 증빙서류를 지참하여 다시 방문하도록 안내하고 사건을 접수 하지 않았다. • 고충민원 처리 • 고소를 함에 있어 범죄사실에 대한 신고가 있으면 되고 범인이 누구인지 반드시 특정할 필요는 없어 피고소인의 인적사항이 불분명하다는 점은 고소 접수의 결격사유가 아니며, 고소장과 진정서를 구분하는 것도 행정편의적인 조치에 불과한 것으로, 피고소인의 이름과 전화번호만으로는 고소할 수 없다며 고소수리를 거부한 담당경찰관에 대해서는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 • 관련 법령 등 • 형사소송법 第237條 (告訴, 告發의 方式) • 형사소송법 第238條 (告訴, 告發과 司法警察官의 措置) • [편파 부실 수사 - 재수사 진정]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인터넷 게임 중개사이트를 통해 신청인에게 리니지 게임 계정을 판매한 자의 사기 혐의를 수사해 달라고 신고하였으나 경찰이 사기 혐의가 아닌「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만 적용하여 벌금형으로 처리한 것은 부당하므로 사기죄 등에 대해서도 수사해 달라. 2. 피신청인 의견 피의자의 행위는 사기죄 등의 구성요건에 해당되지 않고,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행위에 대해서만 입건조치하여 검찰 송치하였고, 어떤 법률로 의율할 지에 관한 것은 사건담당자와 검사가 판단할 사항으로 법원의 벌금형이 확정된 이상 재수사 요청할 법적 절차는 없고, 동일행위를 재조사하는 것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된다. • 고충민원 처리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은 불법행위를 수단으로 하여 재산상 손해를 야기하는 행위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보통신망 자체의 안전성과 그 정보의 신뢰성을 보호하기 위해 접근권한이 없는 정보통신망에 침입하는 행위 그 자체를 처벌하는 것이므로 그 보호 이익이 다르기 때문에 위 법률 위반 확정판결이 있었다 해도, 상대방의 불법행위로 인해 신청인에게 재산상 손해가 발생한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조사할 필요가 있고, 피신청인이 사기죄 성립에 관한 아무런 검토가 없었으므로 신청인이 종전의 판단내용과 다른 법익을 침해한 것을 이유로 고소장을 제출하였다면 피신청인은 형사소송법 제223조에 따라 이를 접수하여 수사할 의무가 있으므로 피고소인 을 재산범죄로 재수사함이 바람직하다는 의견표명 • 관련 법령 등 • 형법 第347條 (詐欺) • 참조 정보 •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 [편파 부실 수사 - 편파수사 조사]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공동폭행 사건에 대해 추가고소장을 제출했으나 피신청인이 사건을 별건으로 수사하고 신청인 에게 고소고발을 남발하는 사람이라는 등 편파수사하고 인권을 무시했다. 2. 피신청인 의견 고소사건이 이미 검찰 송치되어 병합할 수 없었고, 편파수사와 인권 무시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 고충민원 처리 • 추가 고소장이 이전 사건의 검찰 송치 이전에 접수된 점이 확인되고, 수인이 공동으로 범한 죄 등의 사건은 1건으로 처리하도록 규정되어 있으나 이를 별건으로 처리한 경찰관에 대해 특별 교육을 실시할 것을 권고하고, 나머지 주장은 증거가 없는 등 이유로 기각 • 관련 법령 등 • 사법경찰관리 집무규칙 제10조 (사건의 단위) • [편파 부실 수사 - 부실한 증거 조사]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의 처가 아파트 복도에서 의문의 추락사한 사건에 대하여, 지구대 경찰관들이 가장 중요한 목격자 A의 진술과 인적사항을 누락하는 등 부실수사를 하므로 이를 조사하여 처벌해 달라. 2. 피신청인 의견 출동 당시 목격자 A로부터 신청인의 처가 아파트 난간을 잡고 있다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하여 필요하면 추후 협조를 구하기로 하고 근무수첩에 기록하였으나 A로부터 타살이 의심가는 진술을 듣지는 못했고 A가 오히려 목격장소가 현장에서 100미터 떨어져 있어 구체적으로 목격하지 못했으나 또 다른 목격자 B가 35미터 거리에서 신청인의 처가 스스로 떨어지는 것을 목격하였다고 진술하여 B를 상대로 참고인 조서를 작성한 것이고 A의 진술조서는 고의로 누락한 것은 아님. • 고충민원 처리 • 목격자 A가 유족에게 작성해 준 확인서와 목격자 진술조서에 타살 내지 사고사 가능성을 추정할 내용의 증언이 있고, 목격자 B의 진술과 상당한 차이가 있고, 추락 직전의 소란스러운 상황 등 단순 자살로 결론지을 확정적 증거가 없는 상황 등을 고려할 때, 목격자 조사를 소홀히 하여 사건 수사에 차질을 초래하고 유족의 민원을 야기한 담당 경찰관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와 재발방지를 위한 직무교육을 받도록 조치할 것을 시정권고 • 참조 정보 범죄수사규칙 제4조(합리수사) 및 제5조(종합수사), 제8조(규율과 협력) • [적법 절차 위반 - 피의자 권리 미고지]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이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체포된 사건과 관련하여, 신청인은 피신청인의 넥타이를 잡은 사실이 없는데도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되었고, 체포 시 미란다원칙도 고지 받지 못했다. 2. 피신청인 의견 신청인이 탑승한 택시기사의 신고로 출동하였고, 신청인이 욕설과 함께 경찰관의 넥타이를 잡고 3회 가량 흔드는 등 폭행을 행사하여 미란다원칙을 고지하고 현행범으로 체포하였다. • 고충민원 처리 • 지구대 녹화자료에 출동경찰관의 넥타이가 출동전과 달리 흐트러져 있었고, 현장 녹화 동영상에 신청인이 일방적으로 욕설을 하며 술이 많이 취해 있었던 점이 확인되고, 미란다 원칙 고지에 대해서는 신청인과 피신청인의 주장이 상반되며 신청인의 주장 이외에 달리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어 기각 • 관련 법령 등 • 형사소송법 제200조의5 (체포와 피의사실 등의 고지) • 참조 정보 • 범죄수사규칙 제98조(체포 구속 시 범죄 사실 등의 고지) • [적법 절차 위반 - 현행범 체포 이의]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폭행피해를 주장하며 112신고를 하고 자진해서 지구대에 출석한 신청인을 현행범인으로 체포한 것은 위법하다. 2. 피신청인 의견 신사역 사거리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에 대해 피해자와 신청인 모두 112신고를 하여 상대방과 목격자는 현장에서 만나 지구대로 임의동행하였고, 신청인에게는 전화를 걸어 지구대로 출석 시켰으며 지구대에서 당사자와 목격자를 조사하여 신청인 혐의가 인정되어 체포사유 등을 고지 하고 현행범인으로 체포하였다. • 고충민원 처리 • 신청인이 사건 현장을 이탈한 이후에야 신청인과 상대방의 112신고가 있었고, 신청인이 경찰관의 출두 요청 전화를 받고 자발적으로 지구대에 출석하여 체포되었으며, 체포장소가 현장이 아니며 피신청인이 지구대에서 증인 등에 대한 수사 후에 신청인의 범죄사실을 인정한 점 등은 현행범 요건을 갖추지 않은 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한 것으로 담당 경찰관에 대해 징계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 • 관련 법령 등 • 형사소송법 第211條 (現行犯人과 準現行犯人) • 형사소송법 第212條 (現行犯人의 逮捕) • [적법 절차 위반 - 불심검문 절차 위반]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경찰관이 소속·성명도 밝히지 않고 미란다 원칙 고지 없이 긴급체포와 강제수색 등을 실시한 것은 위법하다. 2. 피신청인 의견 대상 경찰관들은 소속 성명을 밝혔고 지구대로 임의 동행하여 소지품을 검사한 것이라 하나, 불심 검문 과정에서 경찰관으로서의 직무를 소홀히 한 점 등 신청인의 주장이 대부분 인정되어 대상경 찰관들을 각 “계고”처분 조치 함. • 고충민원 처리 • 피신청인이 담당경찰관에 대해 감찰조사를 실시한 결과, 신청인에게 소속 성명을 정확히 고지하지 않은 점, 긴급체포가 아니라고 하면서도 신청인에게 긴급체포에 대한 발언한 점, 미란다 원칙의 고지의무 - 보험계약자의 내부적인 개인적 사정 등을 보험자가 알기 곤란하므로 보험계약자 또는 피보험자가 생명보험이나 상해보험 등의 보험계약을 체결함에 있어 보험자에 대하여 중요한 사실을 고지하고 부실의 사실을 고지하지 아니할 의무- 보험자가 서면으로 질문한 사항은 보험계약에 있어 중요한 사항에 해당되는 것으로 추정되고 여기의 서면에는 보험청약서도 포함될 수 있으므로 보험청약서에 일정한 사항에 관하여 답변을 구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면 그 사항은 중요한 사항으로 추정을 다하지 않은 점, 신청인의 동의 없이 가방을 수색한 점 등은 「경찰관 직무집행법」관련 규정을 위반 한 것으로 피신청인이 신청인의 주장 대부분을 인정하여 대상 경찰관에 대한 징계 등 조치를 완료함에 따라 결과 안내 후 종결 • 관련 법령 등 • 경찰관직무집행법 第3條 (不審檢問) • [적법 절차 위반 - 피의자 석방 지연]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은 재물 손괴 혐의로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는데, 경찰이 혐의를 완강히 부인하는 신청인의 주 장을 묵살하고 구속영장의 신청 없이 33시간 40분 동안 부당하게 감금하였다. 2. 피신청인 의견 현장 도착 시 피해자와 시비 중이었고, 신청인도 처음에는 열쇠 뭉치로 간판을 건드려 손괴하였다고 시인하는 등 하여 권리고지 후 현행범인으로 체포하였으나, 신청인이 만취하여 조사를 하지 못하고 유치장에 입감시켰다가 담당자의 철야 근무로 당일 조사를 못하고 퇴근 이후 익일 조사하였다. • 고충민원 처리 • 현행범으로 체포한 피의자를 구속하려면 체포한 때로부터 48시간 이내에 구속영장을 청구하여야 하고, 구속 영장을 청구하지 아니하는 때에는 피의자를 즉시 석방하여야 하고, 현행범인을 체포하거나 인수한 때에는 지체 없이 조사하여야 하고 구금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때에는 즉시 석방해야 하는 것으로, 현행범으로 체포된 신청인에 대해 지체 없이 조사하고 석방하지 않은 담당자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강구할 것을 권고 • 참조 정보 • 범죄수사규칙 제83조(현행범인의 조사 및 석방),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47조(불구속 수사 원칙) • [피의자 인권 침해 - 경찰 장구 과잉 사용]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은 지구대 경찰의 오락실 단속에 협조한 후 경찰이 잡아준 택시로 귀가 중 신청인을 따라온 오락실측 사람이 신청인을 강제로 끌고 가려하여 112신고를 했는데 출동한 경찰이 오락실측 사람의 말만 믿고 신청인을 절도범으로 오인하여 미란다 원칙 고지 없이 수갑을 채우고 현행범 체포하였으 므로 이를 조사해 달라. 2. 피신청인 의견 출동 시 상대방이 신청인을 몸으로 제압한 상황에서 “내 지갑을 이 놈이 가지고 도주 피해자의 사상을 인식하고 병원 후송 등의 필요한 조치없이 피해자를 방치한채 사고현장을 이탈한 경우하여 추격해서 잡았다”고 진술하여 준현행범으로 판단하여 피의자 권리 등을 고지하고 체포했고 도주피해자의 사상을 인식하고 병원 후송 등의 필요한 조치없이 피해자를 방치한채 사고현장을 이탈한 경우우려가 현저 하고 상대방이 계속 주먹질을 하여 신청인을 보호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장구를 사용하였고 확인서 날인 등 형사절차와 원칙에 따라 입건하였다. • 고충민원 처리 • 경찰 장구 사용은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상당한 이유가 있는 때에 사용하고, 최소한에 그쳐야 하며, 도주피해자의 사상을 인식하고 병원 후송 등의 필요한 조치없이 피해자를 방치한채 사고현장을 이탈한 경우, 폭행, 소요 또는 자해나 자살의 위험이 분명하고, 그 위험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상태에서 이를 제거할 필요한 만큼만 사용되어야 함에도, 신청인은 상대방에게 제압당해 오히려 폭행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고, 신청인의 체구가 작아 경찰관의 포위를 벗어나기 용이하지 않고, 신청인이 도주피해자의 사상을 인식하고 병원 후송 등의 필요한 조치없이 피해자를 방치한채 사고현장을 이탈한 경우 신청인이 도주할 우려가 현저하거나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없었다고 판단되고, 신청인의 자해 행위 등 위해 요소도 없었으며 상대방으로부터 신청인을 보호하기 위해 수갑을 채웠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신청인에 대한 장구사용은 부당한 조치이므로 담당경찰관에 대하여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시정권고하고, 미란다 원칙을 고지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이유 없어 기각 • 참조 정보 •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8조(폭행 가혹행위 금지) 및 제53조(체포 구속할 때 유의사항) • [피의자 인권 침해 - 미성년 피의자 인권 침해]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경찰이 학교에서 수업중인 신청인 아들(16세)을 보호자 동의 없이 연행하여 사진을 찍어 수사에 활용 하고, 조사 시 신청인에게 불친절 부적절한 언행을 하였다. 2. 피신청인 의견 청소년 금품갈취 사건에 대한 계도차원에서 사진을 찍었고, 이후 발생한 유사사건에 대해 사실조사를 위해 학교와 부모의 동의를 받아 신청인의 아들을 임의동행하였고, 불친절 언행은 신청인이 조사에 불만을 품고 고성을 지르며 방해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신청인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 고충민원 처리 • 소년 또는 보호자 소환 시에는 보호자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고 학교나 직장에서 공공연하게 소환하는 일은 가급적 피해야 함에도, 정복을 입고 수업중인 학생을 찾아가 보호자의 동의 없이 학교측의 동의만을 구하여 연행하고, 보호자 동의 절차 없이 사진을 찍고 이 사진을 실제 탐문수사에 활용한 것은 부당하며, 부적절한 발언을 한 사실이 확인되어 대상 담당자에 대해 적절히 조치할 것을 권고함 • 참조 정보 • 소년업무 처리 규칙 제8조,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51조(임의동행할 때 유의사항) • [피의자 인권 침해 - 피의자 의료권 침해]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이 이웃에게 폭행당해 손가락이 부러진 채 지구대로 연행된 후, 조사에 앞서 병원 치료를 받게 해 달라는 신청인의 요구를 지구대원이 묵살한 채 경찰서로 인계하였고, 형사과 담당자 역시 신청인의 치료 요구를 묵살한 채 부상자를 장시간 방치했다. 2. 피신청인 의견 출동현장에서 손가락이 아프다고 하여 살폈으나 외상이 없어 골절상를 확인할 수 없었고, 지구대에서는 병원에 보내달라는 요구가 없었으며, 경찰서에 와서 손가락을 움직여 보도록 하였으나 출혈이 없었고 흉기 등으로 인한 상해가 아니라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 판단했으며, 조사 중 아프다 하여 조금만 참으면 조사를 마친다 하자 이후 특별한 요구가 없었다. • 고충민원 처리 • 경찰서 형사과 사무실 도착 후 신청인이 손가락 통증을 호소함에도 외상이나 출혈이 없어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 조사 후 병원에 가도록 했다고 시인하는 등 71세의 노약자인 신청인이 손가락 골절로 인한 통증을 호소하며 병원치료를 요구하였는데도 이를 강압적 태도로 거부한 것은「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 규칙」제7조 등을 위반한 것으로 담당 경찰관에게 적절한 주의조치와 인권 교육을 받도록 조치할 것을 권고 • 참조 정보 •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7조(접견교통권 등 보장) • [피의자 인권 침해 - 피의 사실 언론 보도 피해]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경찰이 수산물 유통행상 절도단 검거사건에 대해 각 언론에 신청인을 절도단 총책으로 보도하여 가족과 지인들에게 권위와 명예가 실추되는 인권침해를 당했고, 경찰이 신청인에게 몸조심하라 협박 하고 범죄사실을 시인하도록 회유하였다. 2. 피신청인 의견 신청인에게 협박하거나 회유한 사실이 없고, 보도자료에 신청인의 이름을 비실명으로 처리하여 배포하였으므로 인권침해가 아니다. • 고충민원 처리 • 신청인의 범죄혐의가 장물취득임에도 특수절도 등 다른 피의자는 제외하고 신청인을 피의자 대표인 것 처럼 성씨와 나이까지 특정하여 보도자료를 작성 배포하였고, 219명의 피의자 중 신청인과 같은 성을 가진 사람은 신청인이 유일하고, 신청인은 그 지역 토박이로 같은 직업에 오랜 기간 종사하여 성과 나이, 직업만으로도 지역민들은 신청인임을 쉽게 추정할 수 있어 신청인의 인권이 침해되었다는 주장을 인정할 수 있고, 피신청인 역시 신청인을 주범격으로 보도자료를 작성한 것은 실수였음을 인정한 바 보도자료 작성 시 피의자 인적 사항을 특정화하고 사실과 다른 내용이 보도되도록 한 경찰관에 대해 적절히 조치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마련할 것을 권고 • 참조 정보 •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83조(수사사건 언론공개의 기준) • [피해자 등 보호 소홀 - 피해자 신변 · 정보 보호 소홀]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은 여성으로 성추행과 모욕 피해를 신고했는데 경찰이 피의자와 피해자를 격리하지 않았고, 피의자가 욕을 하고 접촉을 하려 해도 경찰이 이를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아 공포스런 상황에서 조사를 받았으며, 경찰이 범죄성립에 대해 섣불리 판단하여 죄가 되기에 미약하다 하고, 피의자의 신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돌려보내면서 신청인은 늦은 밤까지 조사를 한 것은 부당하다. 2. 피신청인 의견 지구대의 협소한 여건에 맞게 피해자와 피의자를 격리시켰고, 피의자는 피해자에게 접촉하려 한 적이 없으며 피의자는 임의동행으로 출석한 상태로 귀가를 요청하여 인적사항 및 주거, 연락처를 확인하고 귀가시켰다. • 고충민원 처리 • 신청인이 제출한 CCTV 녹화자료에 피의자가 신청인에게 접근하고 손가락질 하는 장면이 확인되고, OOO가 신청인을 대신하여 작성한 고소장과 진술서에 피의자가 욕을 계속하며 접촉 하려 했다고 기록되어 있고, 피신청인이 CCTV 녹화자료 일부분을 제출하지 못하고 있는 점, 피의자가 사과하려 한 것이라 하나 CCTV 기록상 사과하려는 태도로 보기 어려운 점 등 지구대 공간이 협소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를 완전히 격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더라도 담당자가 보다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않아 성범죄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사실상 위협을 느끼는 분위기에서 조사를 받은 사실이 인정되어 피해자 보호를 소홀히 한 근무자에게 특별교육을 실시하도록 권고하고, 나머지 주장은 기각 • 참조 정보 • 범죄수사규칙 제219조(성폭력범죄 수사 시 유의 사항) • [피해자 등 보호 소홀 - 범죄신고자 정보 누설]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이 성명불상자의 보이스피싱 시도를 인지하여 신청외 OOO 명의의 통장에 대한 지급정지를 금융기관에 요청하였고, 용의자가 계좌해지 과정에서 경찰에 검거되었는데 경찰이 용의자에게 신청인의 인적사항을 알려주어 용의자가 신청인에게 지급정지 해지를 요구하는 일이 발생한 바, 신고자 보호를 소홀히 한 경찰관을 조사해 달라. 2. 피신청인 의견 용의자는 불상의 통장 구매자에게 속아 통장을 양도한 자로 보이스피싱 사건 범인과 연관된 사실은 없고, 신청인이 신고자나 피해자가 아닌 금융기관의 업무담당자로 판단하여 피해금 회복을 위해 신청인의 성명과 직장 대표 전화번호를 알려주었다. • 고충민원 처리 • 피해자 등의 구조에 도움이 되는 사항을 통지하도록 한 「범죄수사규칙」관련 규정은 범죄 피해자 또는 그 친족에 해당하는 것으로 용의자는 위 규정이 정한 통지 대상에 해당되지 않으며, 개인정보 공개 시에는 「범죄신고자등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등 관련 규정에 근거하여 신중하게 처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청인을 신고자가 아닌 단순 금융기관 업무 담당자로만 판단하여 정보를 알려준 것은 중대한 주의의무 위반으로 보이고, 설령 금융기관 담당자라 하더라도 보호대상이 된다 할 것이며, 용의자의 전화로 신청인이 신변의 불안감을 느낄 수 있는 점 등을 종합할 때 신고자 개인정보를 유출하고 신변보호를 소홀히 한 경찰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 • 참조 정보 • 범죄수사규칙 제10조3, 범죄신고자등 보호 및 보상에 관한 규칙 제4조2) • [직무 태만·무례 행위 - 업무 인수인계 부실]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경찰이 신청인 어머니를 구치소에 감치하면서 가족에게 연락도 하지 않고, 어머니를 데려간 지구대가 신병 조치 현황도 파악하지 못한 채 가족에게 실종신고를 하라고 한 것은 부당하다. 2. 피신청인 의견 민사 채무로 인한 법원의 채무자 감치 명령을 집행한 것이고, 신청인 모친이 창피하다며 가족에게 알리는 것을 계속 거부하였고, 채무자 감치 통지는 법원이 집행일로부터 3일 이내에 하도록 규정되어 있어 달리 통지하지 않았으며, 업무 교대 시 전산수배 기록, 근무일지 등을 확인하면서도 신청인 모친에 대한 감치집행 보고서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다. • 고충민원 처리 • 담당경찰관이 가족을 직접 찾아가 신청인 어머니를 참석하에 민원 발생 경위 등에 대해 설명하고, 피신청인이 업무 인계이수 등 부족함을 개선하고 재발방지를 위해 지구대 전 직원을 대상으로 특별 교양을 실시하였으며, 신청인이 피신청인의 의견과 조치 결과를 수용하겠다는 의견을 표명함으로 민원 종결 • 참조 정보 • 지역경찰 조직 및 운영에 관한 규칙 제19조 • [직무 태만·무례 행위 - 수사 결과 등 미통지]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신청인이 신고한 오토바이 절도 피해 신고사건에 대해 피신청인이 11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통지도 없고, 신청인의 신고로 검거된 별건의 오토바이 절도 사건 피의자에 대해서도 신청인의 오토바이 절도 혐의를 조사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아무런 연락이 없다. 2. 피신청인 의견 신청인의 피해 신고사건은 용의자를 검거하지 못해 미제 사건으로 편철하였고 계속 수사할 것이며, 신청인의 신고로 검거된 별건의 절도사건 피의자는 신청인의 오토바이를 절도한 혐의는 확인 할 수 없었고, 신청인에게 사건 현황 등을 통보하지 못한 점은 인정함. • 고충민원 처리 • 「범죄수사규칙」에는 피해자에 대한 사건의 처리 진행상황 등을 통지하도록 규정되어 있고, 피신청인이 사건에 대해 ‘범인 검거 전망이 희박함’을 들어 미제사건으로 편철까지 하였음에도 피해자인 신청인에게 아무런 통지도 하지 않은 것은 통지 관련 규정을 위반한 것으로 담당 경찰관에 대해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 • 참조 정보 • 범죄수사규칙 제204조(사건처리 진행 상황에 대한 통지) • [직무 태만·무례 행위 - 경찰관 반말·욕설] • 고충민원 개요 • 1. 신청 취지 &nbsp; 술값 계산 문제로 발생한 폭행사건에 대해 사건 담당 경찰관이 신청인에게 약속 시간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는 등을 이유로 폭언과 욕설을 하였다. 2. 피신청인 의견 신청인이 약속한 출두 시간을 어기고 전화도 받지 않아 대질조사를 하지 못했고, 피해자 귀가 후 신청인 이 뒤늦게 상해진단서를 가지고 출석하였으며, 신청인이 동생처럼 생각하여 해 준 말에 대해 술값이나 받아주려는 사람으로 오해하고 있는 신청인에 대해 실망하여 순간적으로 자제력을 잃고 욕설을 하였다. • 고충민원 처리 • 경찰관은 직무수행 중 폭언, 강압적이거나 비하하는 어투나 언어 등을 사용하거나 모욕감 또는 수치심을 유발하는 언행을 하여서는 아니되며,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하여야 할 의무가 있음에도 이를 준수하지 않고 신청인에게 욕설 등 폭언을 한 담당 경찰관에 대해 인권교육을 받도록 하는 등「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의 징계 등 적의한 조치를 취할 것을 권고 • 참조 정보 • 인권보호를 위한 경찰관 직무규칙 제4조(인권보호 원칙) 제6조(무죄 추정)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신문 www.wandonews.kr입력 20101220
-
특별기고-한국교회 설교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특별기고 - 정장복 교수 (장로회신학대학교 실천신학 교수) 한국교회 설교는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가?설교사역의 위기요소 분석과 그 대안의 모색▲정장복 총장(한일장신대학교) ▲ 정 장 복 교수 -한일장신대 총장 서언: 백년의 역사를 회고하면서 느꼈던 감격과 새로운 다짐들은 벌써 시들기 시작하여 그 함성과 발길을 찾기 힘들다. 교회의 갱신이 필연코 있어져야 한다는 젊은 결단들은 다 시들어져가고, 오히려 교회의 무기력이 이 땅위에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도덕성의 퇴보와 윤리의 실종현상은 이 민족의 25%를 점유하고 있다는 기독교의 무기력함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잘 나타내주고 있다. 시대의 정신세계는 언제나 물질문명의 발전과 반비례한다. 과학의 기술과 경제적 발전이 거듭되는 세계일수록 그 땅의 엄격했던 도덕성과 정신적인 전통성은 퇴색되기 시작한다. 여기에 우리의 한국의 세계도 예외가 되지 못한 채 심각한 진통을 앓고 있다. 특별히 이 땅의 엄격한 유교의 윤리사상과 접목되어 활발하게 행군을 계속했던 우리의 기독교는 어느 시대에서도 경험하지 못했던 심한 딜렘마에 빠지기 시작한다. 이 땅의 교회의 구성원들도 평범한 시민으로서 삶의 향상과 현대의 문명을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은 너무나 타당한 말이다. 그리고 거기에 설교자도 이 시대에 사는 인간이기에 문명의 이기(利器)를 십분 활용하면서 현대의 특권을 누릴 권리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상대적으로 시들어져 가는 설교사역의자의 고유한 정신(Ethos)과 사려 깊은 노력의 결핍이 문제이다. 즉 청교도의 신앙에 뿌리를 두고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던 소명의 다짐과 거기에 따르는 설교자의 철저한 생활에 너무나 심한 변화가 일고 있다는 문제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종으로서의 그 고결한 땀과 눈물이 서서히 식어져 가고 이 시대의 혼탁한 물결에 휩싸이지 아니하려는 몸부림이 사라져가는 현실이다. 그러기에 우리 설교의 단에 불이 꺼져가고 있다는 지적이 일기 시작한다. 그토록 좋은 음향장치를 했고 화려한 장식이 가득한데도 오늘의 설교가 무기력하다. 이 민족의 가슴에 그 유창한 설교가 스며들지 못한다. 설교자를 통하여 전달되어져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이 외면을 당하고 있다. 좀더 솔직한 표현을 한다면 오늘의 교인들은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예배당을 찾아갈 수밖에 없으나 오히려 설교 때문에 깊은 실망을 안고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아니함을 쉽게 느낄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가리켜 설교학계에서는 [설교의 위기]가 도래했다는 진단을 내리게 되고 적신호를 켜게된다. 세계의 어느 교회에서나 발생했던 이러한 설교의 적신호를 보면서 자기점검을 했던 설교자는 살고 그렇지 못한 설교자는 설교의 몰락과 임종이라는 비극의 종점에 이른다. 2. 성찰을 요구하는 시대적 변화 회고해보면 한국의 기독교는 이 민족이 고통의 눈물을 흘리던 시절에 들어와 한 세기를 넘긴 종교이다. 이 땅에 기독교가 상륙하기가 무섭게 바로 이어진 한일합방의 민족적 비극이 발생되었다. 그때부터 식민지 교회로서의 울부짖음이 하나님을 향하여 터지기 시작했으며, 순교를 부르는 핍박의 마수(魔手)가 한국교회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리고 일제의 극심한 착취는 계속되어 이 땅의 가난은 극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이러한 비극이 끝나기가 무섭게 남과 북으로 나누인 이 민족은 동족살상(同族殺傷)이라는 더욱 무서운 전쟁의 참화를 겪어야 했다. 이 무섭고 부끄러운 역사의 장이 끝나자 우리의 민족은 이 땅의 공산화를 막기 위한 갖은 노력을 기울였고 곧 등장한 군사정권과 함께 가난의 탈피를 가져오는데 함께 하였다. 그리고 터무니없이 등장하여 칼을 휘두른 정권이 인권을 짖밟을 때는 심각하게 저항하는 기록을 남기면서 [백담사의 귀향]이라는 희귀한 기록을 남기기도 하였다. 사실 우리의 지난 한 세기는 한일 합방의 비극에서부터 80년대의 군사정치의 횡포에 이르기까지 숱한 변혁을 겪어야 했고, 때로는 잔혹한 삶에 시달려야 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아픔의 역사는 어느 민족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그러기에 우리의 교회는 어느 민족보다 강한 종말론적 신앙을 가지고 뜨겁게 주님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말씀에 깊은 뿌리를 둔 신앙의 불을 피우면서 그의 재림을 고대하였다. 한국교회의 한 사가(史家)는 이 때의 신앙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종교의 특징은 , 철저하게 내세적이요 현실 부정적이면서도 가혹할 정도로 경험적이고 감각적인 생태에 접속하게 되어 있어서, 축복과 열복의 상징인 내세의 천국이 여기, 이 땅에서 그 종말의 아련한 대망의 자리에, 물리적으로 체험 가능하게 이르기를 줄기차게 갈망하는 데 있었다. 지난 한 세기를 돌이켜 보면 한국교회는 이상과 같은 연속된 불운의 늪에서 헤매이는 이 땅의 백성들에게 소중한 피난처이었고 도피성이었다. 그러기에 이 피난처에서 들려지는 말씀은 위로와 힘이 되었고 삶의 방향을 지배하는 막중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더군다나 그 말씀이 단순히 인간의 발상이나 지혜에 근본을 두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옷을 입었을 때 어느 누구도 감히 그 말씀을 향하여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오직 감사와 감격으로 일관하면서 눈물을 흘렀다. 그리고 거기에는 순종하는 길만을 걷기를 스스로 다짐하는 무리들로 행렬을 이었다. 자신의 건강에 이상이 와도 병원보다는 손쉽게 주의 종을 찾았고, 사업이 무너지는 아픔을 당하여도 예배당의 문전을 찾아 엎드려 기도를 드렸으며, 정치와 사회로부터 상처를 받아도 오직 말씀으로 위로 받기를 바라는 성도들로 예배당은 가득히 채워졌었다. 이러한 신앙으로 가득한 교회에서는 설교사역은 절대권위를 부여받게 되고 그 강단의 주역은 언제나 거룩한 권위와 반신적(半神的)인 존재로 군림을 한다. 그리고 메시지의 구성이나 전달에 별로 어려움을 겪지 않고서도 특유한 음성과 태도와 영성의 권위만을 가지고서도 우뚝 솟은 교회의 주인으로 등장하는 것이 교회사에 나타난 일반적인 현상이다. 바로 이때의 설교자는 쉽게 카리스마적인 존재로 등장하여 절대영향을 주는 위치를 쉽게 확보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설교의 준비를 위한 큰 부담 없이 자신의 경험이나 예화의 진열로 설교의 시간을 메꾸어도 아무도 그 설교자에게 도전장을 던지는 교인들은 없게된다. 이러한 교회의 양태를 가리켜 흔히들 혼돈과 수난의 교회라고 이름하며, 설교자에게는 이러한 교회의 강단이 오히려 안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자신도 모른 사이에 계속적으로 그 세계에 머물고 싶어하는 타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21세기의 문전에 도달한 오늘 한국 교회는 달라진 시대의 철로 위를 달리고 있다. 다시 말하면 달라진 세대가 교회의 주역들이 되었고 그 주역들의 눈과 귀는 과거의 것이 아닌 전혀 새로운 시대의 것이다. 어둡고 지루하고 눈물로 얼룩진 불행한 어제의 사연들을 경험하기를 거부하는 그들이다. 그들은 높은 교육수준에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하려한다. 경제적인 면에서는 비록 상대적 빈곤을 느끼는 경우가 있어도 그들은 스스로를 극빈자로 말하기를 거부하면서 중산층의 세계에 머무는 자신이라고 말하고 또 그렇게 희망한다. 비록 달동네의 삶을 지속하는 현실이더라도 고임금을 손에 쥐면서 내일에의 희망은 언제나 밝게 꾸며간다. 어둡고 비겁한 정치가들을 과감히 바꾸는 주권을 이제는 행사하면서 절대권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날카로운 비판의식을 가지고 시(是)와 비(非)를 분별하는 능력을 행사하기 원한다. 뿐만 아니라 맹종의 신앙보다는 합리적인 신앙을 추구하기를 희망한다. 그들은 무식한 설교자보다는 지성적인 설교자를 원한다. 그들은 신선하고 창의적이며 역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설교자 앞에서는 겸손히 고개를 숙이고 지루하고 아무런 변화도 없이 강단을 지키는 설교자에게는 경멸의 눈길을 보내는 모습을 서슴없이 나타내고 있다. 거기에 더하여 눈길을 끌고 있는 것은 50년대와 60년대를 살아오던 세대마저 그토록 간절하게 지켰던 종말론적인 신앙들을 상실한 채, 먹고 살만한 오늘에 대한 애착이 대단히 깊은 상태이다. 이들의 신앙은 이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재림이 연기되기를 바라는 인간심성을 보이고 있다. 결국 이들도 과거 지향적이고 틀에 박힌 설교에 대한 환멸을 느끼면서 새로운 시대에 있어져야 할 신선한 설교자를 찾고 오늘의 수준을 이끄는 설교를 추구한다. 3. 한국강단을 침몰시키는 요소들 시대의 변천이나 개인의 발전이 어떤 단계에 이르든지 인간은 빵으로만 살수 없는 피조물임을 스스로 알고 한국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기 위해서 아직껏 교회를 찾고 있다. 특별히 하나님 신앙은 그 표현에 있어서의 문제는 있었으나 "기독교나 천도교만이 소유한 것이 아니라 한국인 전체가 공유한 아득한 옛부터의 신앙임"을 인정할때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사역은 이 땅의 종교문화로부터 거대한 위치를 차지고 있다. 이런 종교문화에 발판을 둔 한국 기독교인들의 특별한 심성은 신의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에 대한 대단한 존경을 갖게 되고 주어진 메시지에 관하여는 최우선적인 경의를 표하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기서 깊은 주의를 요하는 것은 첨단의 문화에 승선(乘船)한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선포된 메시지에 맹종적인 경청이나 추종을 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판단을 거쳐 소화 내지 거부를 한다는 현실이다. 이제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문제를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목이 쉬도록 외친 오늘의 설교자 앞에 앉아 있는 성도들이 그 설교에 만족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이다. 현대 커뮤니케이션의 이론대로 전달한 메시지가 의도한데로 회중들에 의하여 공유(共有-Sharing)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설교자가 자신이 전한 메시지에 대한 메아리가 최소한 다음의 것들이기를 바라는 것은 조금도 이상할 수 가 없다. "목사님, 오늘의 설교는 저의 생애에 소중한 결단을 가져오게 했습니다." "목사님, 오늘의 설교에서 깊은 은혜와 감명을 받았습니다. " "목사님,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저의 고민하여 온 문제의 해답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이러한 주옥같은 반응을 받은 설교자들이 한국의 땅에 분명히 있다. 그리고 그들의 교회가 성장을 거듭하면서 생명이 차고 넘치는 말씀으로 가득한 현장을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한국교회 강단에서 위와 같은 응답을 듣는다는 것은 설교자의 희망사항일 뿐 실질적으로 설교자의 귀에는 좀처럼 들리지 아니한 것들이다. 오히려 설교자의 가슴을 너무나 아프게 하는 다음과 같은 속삭임이 설교자의 귀에 훨씬 쉽게 들려온다. "오늘도 예화의 진열장으로 설교가 끝이 나고 말았군" "또 자신의 경험과 세상 이야기를 나열한 채 그 아까운 시간을 보내고 말군"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한 자장가에 불과 하기에 나는 잘 수밖에 없었어" "이제는 지겹고 실증만을 불러일으키는 설교가 되어 더 이상의 인내는 힘이 들어" 여기서 우리의 설교자들은 깊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무엇 때문에 오늘의 설교현장은 이렇게 슬픈 반응을 받게 되며 침몰되어가는 조각배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가? 분명코 까닭이 있다. 까닭이 있기에 문제가 발생되었다. 그 문제들은 지금껏 설교자를 반신적(半神的)인 존재로 절대화 시켜온 우리의 강토에서는 언제한번 시원스럽게 파해쳐보지를 못하였다. 유교의 유산으로 너무나 오랫동안 이 땅에서 지속해온 계층의식은 설교자의 모순과 이탈을 감히 지적하지 못하도록 하여왔다. 이것이 바로 수직문화의 비극이요 더 낳은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 그 결과는 오늘의 설교를 위기의 상황으로 몰고온 독소들을 오히려 더 확산시키게 되었고 오늘의 설교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무엇이 우리의 성스러운 설교의 사역을 병들게 하는 요소들인가? 1). 설교 전문인을 위한 교육과정의 시급성 교육이란 천부적인 특수한 재능을 가진 자에게는 그것을 더욱 개발하여 빛나게 하는 것이며 그렇지 못한 자에게는 후천적인 노력을 통하여 어느 한계에 도달하게 만드는 거대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기에 교육이란 모든 분야의 필수적인 것이며 초석이 되는 것이다. 특별히 특수분야의 경우는 그 교육은 훈련의 성격을 동반하면서 전문인으로서의 기능과 위치를 확보해주는 중요한 역활을 감당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달해야 하는 사명자들은 누구나 함부로 감당할 수 없는 특수분야의 전문인들이라는데 아무런 이의를 달지 않는다. 이 말씀의 사자들은 인간사회가 지향하는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기 전에 신과의 깊은 연접(Link)과 그것을 지속하는 높은 영성(靈性)의 지속을 요구한다.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필수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할 수 있는 기본 실력을 쌓아야 하고 그 말씀을 전달하는 방법과 기술에 대한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 더욱이 설교를 듣는 회중들의 교육수준이 고도화 되어가는 오늘에 설교자가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설교의 이론과 실제 과정의 성실한 이수는 그 시급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본다. 다음은 1925년 강도학(講道學)을 펴내는데 역자로 참여했던 고려위(高麗偉)는 오늘 우리가 반듯이 음미해야 중요한 부탁을 남긴바 있다. 福音은完全無缺한眞理이나其傳하난方法의巧拙이잇셔聽衆을感분激昻케하난 差等이不無하니講道의效果를獨히聖神의게만依하고其法을少許도學習하지 아니하니함은妄信이오愚見이라 2). 극도에 달한 "나"의 등장 전통적으로 설교사역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오늘의 회중들에게 그들의 언어로 운반하는'말씀의 사자'로 이해되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칼빈이 설교자를 하나님의 위탁을 받은 대사(Ambassador)로 이름하였다. 그리고 칼 발트도 설교를 정의 할때 "하나님이 선택한 설교자를 통하여 인간들에게 들려운 하나님 자신의 말씀"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전통적인 설교자에 대한 견해는 오랫동안 기독교의 강단에서 지속해왔다. 그래서 설교는 언제나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삶의 장에 적용해주어야 하는 당위성을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러한 맥을 이은 한국 교회에서도 처음부터 그렇게 가르쳐왔다. 한국의 신학교육의 초창기 부터 설교학을 가르쳤던 곽안련 교수는 "설교인은 청중에게 향하여 마치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아는 바를 너희에게 말하겠다.'와 같은 태도"는 절대 금물임을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을 받은 평양신학교 출신 설교자들은 자신들이 받은 설교의 교육을 실현하는데 최선을 다하였다. 그러나 오늘의 설교자들은 전혀 다른 세계를 달리고 있다. 설교학 교육의 수준이 경험담을 들려주는데 끝난 시절의 피교육자들인 이들은 신언(神言)과 인언(人言)을 분간하지 못한 경지 속에서 설교의 사역을 감당하고 있다. 우리의 귀에 들려져야 할 설교문장은 예를 들면 분명히 다음과 같은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 말의 뜻은 바로 이런 말씀입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경우 (간단한 실례-예화)를 가르킨 말씀입니다" 또는, 우리 주님은 오늘도 우리를 향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는 명령을 하고 계십니다. 그 뜻은 이러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러한 사례의 경우입니다." 이처럼 모든 설교의 문장의 주어는 성삼위(하나님, 예수님, 성령님)으로 분명하게 구성되고 그 뜻을 밝혀주고 적용을 해주는 것이 설교의 본질이다. 이럴 때 만이 메시지의 주인이 뚜렷하고 설교자가 단순히 도구(Instrument)의 역을 감당함이 분명해진다. 이러한 신언의 부각은 주어를 중심하여 엮어진 인도 유럽말의 경우는 조금도 지장을 받지 않고 너무나 당연하게 지켜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언어는 술어중심의 언어로서 주어가 너무 많이 생략된다. 더욱이 일인칭 주어는 아예 생략하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고 오히려 정감을 더해주기에 주어 없는 문장의 활용이 너무 보편화되고 있다. 이러한 결과는 오늘의 설교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다음의 종결어(終結語)에서 너무나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그로 인한 설교의 탈선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충분히 입증을 해 주고 있다. '축원합니다.'' 믿습니다' '원합니다.''바랍니다' '생각합니다' '느낍니다' '기원합니다' 이상에서 본 종결어의 주어는 어떤 경우도 설교자 (나) 자신이다. 여기서 외국의 설교자와는 달리 한국의 설교자는 너무나 자신의 등장을 극심한 경지에까지 끌고 가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결과는 설교내용이 설교자의 말과 경험과 지식과 그가 즐겨쓰는 예화로 완전히 채색된다. 그리고 회중들로부터 '아멘'만 유발시키면 모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된다는 착각에 빠지고 있다. 이러한 현장에서 너무나 뚜렷이 나타난 현상은 막상 전해져야 할 하나님의 말씀은 설교자의 말에 가리워져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는다는 사실이다. 말씀의 주인이 나타나지 않은 설교, 그것은 가장 심각한 설교의 위기를 몰고온 위급한 요소라 아니할 수 없다. 3) 한국의 설교자와 설교 횟수의 축소 개신교는 말씀이 육신이 되신 그리스도에 촛점을 둔 종교임에 틀림이 없다. 그래서 언제 어디서나 말씀으로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한국 교회도 말씀을 사랑하고 그 말씀의 선포가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신선한 내용과 타당한 논리를 수반하지 않고 시간을 메꾸기 위하여 지속적으로 외쳐진다면 거기에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하지 않을 수 없다. 뿐만 아니라 동일한 인간에 의하여 동일한 메시지가 반복되어진다면 말을 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모두에게 막중한 부담을 안겨주게 되며 바라는 효과성은 지극히 제한을 받게된다. 우리의 한국교회의 설교자가 감당해야 하는 설교의 횟수와 그 양은 실로 지탱할 수 없는 한계에 도달하고 있다. 한 주간을 두고 보면 주일 낮설교를 비롯하여 주일밤, 수요일 밤, 그리고 매일의 새벽과 금요철야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설교자는 설교의 홍수 속에 휘말리고 있다. 최소한 주일 낮과 밤, 그리고 수요일밤 만을 계산해도 일년에 165회의 설교를 해야하고 10년이면 1560편의 설교를 해야 하는 실정이다. 과연 이런 짐을 한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것인가? 한 설교자가 소유하고 있는 언어와 지식은 한계가 있는데 이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늘 신선하고 역동적인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면 실로 부끄러움에 가까운 사건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세계의 어느 교회를 가보아도 한국 교회처럼 설교만을 의존하는 예배가 이렇게 빈번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든 형편이다. 그리고 설교의 역사에 아무리 위대한 설교가라 하더라도 수 천편의 설교를 남겼다는 기록은 아직 읽어본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의 설교현장만은 이 엄청난 사역을 진행시키고 있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어쩔 수 없이 수 없는 반복을 거듭해야 하고 거기에 더하여 기계적인 습성, 그리고 만성적인 언어의 유희를 수반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럴 때 교회의 강단은 생명력을 잃게 되고 설교는 몰락의 벼랑을 향하여 서서히 달려 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기에 설교의 횟수를 줄이는 것이 설교자와 회중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길이라고 본다. 주일의 낮예배 만은 하나님과 인간에게 부끄러움 없는 반듯한 설교를 하도록 하고 주일밤과 수요일 밤의 기도회 등은 모두 성경강해 또는 계획된 성경공부를 비롯한 효과적인 프로그램을 개발 할 필요가 있다. 이럴 때 설교는 기다림 속에서 경청을 하게 되고 새롭고 신선한 말씀으로서 회중들의 심령에 심어 질 수 있다. 교회의 예배가 진정 목사의 설교에 성패를 건다는 것은 너무나 무모한 일이다. "기독교 신앙을 전하는 데 있어서 독보적 존재로서 우상화되어 왔던 설교는 이제 그 왕관을 벗을 필요가 있다"라고 설파한 베델(Theodore Wedel)의 말에 새삼스럽게 귀를 기울여 음미해 볼 필요를 느낄 시점에 와 있다고 본다. 4). 설교의 복제문제와 개발의 필연성설교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매일 받아먹었던 만나와 같은 것이다. 그때의 만나는 어제의 것을 오늘 다시 먹을 수 있는 것들이 아니었다. 안식일을 제외한 모든 날들은 그 날 받아 그 날 먹어야 했던 가장 신선한 양식이었다. 생각하면 오늘의 설교도 언제나 신선한 만나와 같은 양식으로 회중들의 심령에 넣어 주어야 하는 것이 너무나 타당한 일이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한 주간 내내 말씀의 전달 때문에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몸부림을 치면서 메시지를 받고, 그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리기에 자신의 시간을 아낌없이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그 말씀에 먼저 용해되는 감격을 경험하고 난 후에 회중들 앞에 서서 그 감격의 메시지를 전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어느 나라에서도 볼 수 없는 하나의 이변이 발생하고 있다. 그것은 설교집의 출판이 당연한 경쟁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 목적이 뚜렷하지를 아니하다. [나는 이렇게 설교를 했다]는 자랑인지 아니면 단순히 자신의 설교를 기록화 시켜 교인들에게 다시 읽히도록 하는 목적인지 분간하기 어렵다. 그러나 두 가지의 뜻하지 않은 부작용을 수반하는 경우를 본다. 하나는 동역자 된 설교자들이 그 설교문을 그대로 복사하여 강단에 들고나서는 부끄러운 죄를 유발시키는 것이고, 둘째는 자신이 펴낸 설교를 교인들이 읽고 난 후 어느 때인가 [목사님은 지난번 했던 설교들을 다시 재탕하십니다] 하면서 새로운 실망을 불러일으킨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필자는 후자보다는 전자의 사건에 더욱 깊은 두려움을 가져본다. 자신이 먹이고 가꾸는 양들을 위하여서 목자는 더 좋은 꼴을 찾아 헤매이는 수고를 해야함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땀을 흘림이 없이 다른 목자가 이미 먹여버린 것을 울 넘어 가져다가 자신의 것인양 내양들을 먹여도 되는 것인지를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런 행위가 습관화되는 날 찾아오는 결과는 참으로 비참한 것들이다. 그것은 자신의 설교능력이 급격히 저하되어 그 회복이 너무 어려운 지경에 이른다는 사실이며, 또 하나는 회중들이 다른 곳에서 듣거나 동일한 설교집을 읽은 경우 조금의 동정도 없이 경멸의 시선을 자신에게 보내게 된다는 사실에 깊이 유의해야 한다. 현대를 달리는 설교자가 분명하게 알아야 할 것은 교회마다 그들의 환경과 수준과 신앙의 특수성을 가지고 있으며 그들만을 위하여 필요한 양식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결코 남의 설교를 복사하여 그대로 먹일 수 없는 자신들의 양들임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삯군된 목자는 그 이마에서 땀 흘리기를 거부하고 쉽고 편한 곁길을 즐겨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참 목자는 눈물과 땀을 때로는 피까지 흘리기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양들의 먹이를 찾아 먹인다. 홍수처럼 쏟아진 설교집이 오늘의 설교사역에 에덴동산의 과일처럼 등장이 되고 설교자들에게는 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 되고 있다. 특별히 자신이 설교를 하려는 본문과 주제를 결정한 후에 설교자의 손이 서서히 남의 설교집을 만지고 그 눈길이 거기에 머물려는 유혹은 참으로 곤혹스러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참된 설교자는 거기서 과감한 결단을 내리면서 야곱처럼 자신의 환도뼈가 상하더라도 하나님을 붙들고 내 양들이 살찔 수 있는 양식을 달라고 매어달리면서 펜을 잡고 자신의 설교원고에 받아쓰는 과정을 밟아야 할 것이다. 본훼퍼가 조국에 돌아가 히틀러의 칼날을 피하여 지하의 신학교에서 설교학 교수로서 열강을 토하면서 남긴 말이 새삼스럽게 한국의 설교자들을 향하여 들려지고 있다. "설교는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 그 자신이다....말씀으로서 회중들 가운데를 걷고 있는 그리스도 그 자신이다." 그렇다 설교자는 오늘 자신의 간절하고 절박한 기도와 땀흘린 준비가운데서 그리스도가 나에게 맡겨진 회중들에게 오셔서 그 가운데 걷도록 해드리는 것이 오늘 한국의 강단을 지키는 설교자의 진정한 사명이다. 5). 설교자의 땀과 피로 적시는 설교[목회의 장(場)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목회자들에게 던질 때 응답자의 70%가 설교라고 대답을 한다. 이러한 응답은 설교자들의 생활 속에서 그대로 반영이 된다. 그들은 계속적으로 이어지는 설교에 대한 부담을 앉고 살아가는 현실이다. 그러나 문제는 설교자들이 막상 설교준비를 위하여서 내놓은 시간은 30%도 되지 않은 다는데 그 심각성이 내재하고 있다. 설교가 목회의 장에서 70%의 비중을 차지한다면 자신의 시간도 그 정도를 할애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모순을 안고 있다. 설교자는 성령의 손에 잡힌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설교가 수록되어진 녹음기와 같은 단순도구가 아니다. 설교사역은 언제나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전달하는 일이다. 그러기에 설교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기 위하여서는 자나깨나 명령을 기다리고 생각하고 자료를 찾아 헤매이는 것이 생활의 전부가 되어야 한다. 사실 설교의 준비는 끝없는 정성과 준비가 요구되어진 특수한 사역이다. 이런 까닭에 설교자는 남달리 건강한 영성를 가꾸어 영적으로 건강한 호흡을 하는 존재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터득할 수 있는 지적인 바탕과 성장을 쉬지 아니해야 할 존재이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브라이트 신학교 설교학 교수였던 베켈히머(H. Beckelhymer)의 말을 되새겨 본다. 성공적인 설교란 쉬운 것이 아니다. 설교를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성공적인 설교가 무엇인지조차도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설교란 한 인간의 신앙과 정성어린 마음과 언어의 기술과 그리고 지적인 모든 바탕의 최고점을 요구하는 중요한 일이다. 이러한 설교자는 25분의 설교를 위하여 최소한 25시간을 쏟을 수 있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즉 매일의 오전 4시간은 설교준비를 위하여 바치는 설교자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그리고 삶의 장에서 주어진 말씀을 적용할 수 있는 정황을 누구보다 예민하게 감지 할 수 있는 예지의 감각이 추구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은 심방을 비롯하여 각종행사와 기타의 일에 너무나 많은 시간을 쏟아버리고 피곤한 주말에 설교를 준비한다고 앉아있게 된다. 이러한 설교자에게 시선한 만나가 주어지고 그 말씀의 깊은 의미를 터득 할 수 있는 길이 열릴 수 있는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피곤과 졸음의 산실(産室)에서 과연 생명을 깨우치는 설교가 이룩될 수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6). 성언이 없는 설교의 범람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지지 않은 가장 직접적인 원인은 기록되어진 말씀이 설교자에 의하여 현장의 언어로 선포되어지지 않고 해석되어지지 않은데 기인한다. 설교는 설교자의 사상이나 경험이나 유명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종교수필 또는 교양강좌가 아니기에 언제나 기본적으로 봉독되어진 성경의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이 설교자의 정도(正道)임은 수차에 강조해온 사실이다. 그러기에 진정한 설교자는 자신의 설교현장에 얼마나 많은 회중들이 모여 열광적으로 '아멘'을 연발하는가에 눈을 뜰 것이 아니라 자신이 얼마나 충실히 하나님의 말씀을 순수하게 그들에게 들려주었는지에 깊은 관심을 갖는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의 강단에서는 참으로 부끄러운 설교자의 연출이 속출하고 있다. 즉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의 봉사자가 아니라 지배자로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설교자가 자신의 생각과 사상, 그리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와 흥미진진한 예화를 나열한 후에 하나님의 말씀인 본문을 들려주는 현상이 너무나 빈번하게 발견되어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지식과 분석, 또는 경험을 실은 이야기하고 난 다음에 그 경험담에 좀더 튼튼한 신빙성을 부여하기 위하여 설교가 시작되기 전에 봉독한 본문을 인용하여 본문은 설교자를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 역할 이상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설교의 현실을 우리의 한국교회에서는 너무 자주 보게된다. 이러한 선상에서 오늘도 설교사역을 감다하고 있는 설교자는 다음의 말에 깊은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메시지의 재원이 시대적인 사건, 문학, 철학, 정치 이데올로기 등이 될 수는 결코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설교자 자신의 경험과 감정까지도 설교의 원천이 되어서는 안 된다. 오직 설교의 메시지는 성경에다만 그 원천을 두어야 한다. 여기서 한국의 강단이 인식해야 할 또 하나의 사실은 설교는 단순한 신앙간증과는 너무나 다른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는 문제이다. 신앙간증은 자신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자신의 경험과 판단에 기준을 두기 때문에 회중들로부터 공감대만 형성하면 된다는 지극히 한정된 제약을 받는다. 그러나 설교는 그 기준이 그 날의 설교본문에 있다. 그 본문은 설교자와 회중 모두에 의하여 함께 읽혀진다. 거기서 회중들은 그 말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소유한 상태에서 설교자가 그 말씀을 어떻게 선포하고 해석하고 자신들의 삶의 장에 적용시켜주는지를 주시하게된다. 그러기에 설교는 수많은 회중의 감시를 받으면서 본문이 말씀한 범위를 벗어나서는 아니되는 엄격한 제한을 받고 있다. 결과적으로 설교자는 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그 말씀을 듣기 위하여 설교자의 앞에 앉아 있는 무리들로부터 우선적으로 봉독되어진 말씀의 지배자가 아닌 봉사자가 될 것을 철처히 요구를 받게된다. 7). 물량주의와 기복사상을 심는 설교의 실상 설교는 시대상황에 따라 메시지의 방향이 어느 한편에 치중될 수 있고 또 그러하여야 한다는 당위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시대의 형편이 어떤 위치에 있던지 그 메시지는 하나님을 중심하여 그 나라와 의를 확장해 나가는데 그 기본적인 목적을 두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 메시지의 바른 형태이며 지난 수 천년 동안 설교사역의 주역들은 이 괘도를 지키기에 심혈을 기울여왔다. 그런데 우리의 한국 강단은 이 땅의 종교문화에 너무 극심하게 편승을 하고 있다. 즉 가난을 탈피하고 한을 풀어 풍족한 복을 누리려는 절박한 욕구를 종교에서 채우려는 신앙심을 그대로 수용하는 메시지가 범람하고 있다. 즉 하나님이 무엇을 원하시는가를 전하는 것이 아니라 회중들의 영과 육과 범사가 잘되어 복을 담아야 할 그들의 창고가 차고 넘치는 길을 알려주는데 주안점을 둔 설교가 너무나 보편화되어 있다. 거기서 다시 한번 한국의 강단이 흔들리고 침몰의 위기를 맞는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결과는 회중의 가슴을 울리고 반성과 회개를 촉구하는 예언적 설교의 현장에는 교인들이 모이지를 아니하고 [축복의 성회],[신유의 성회], [은사의 성회]라는 현수막이 있는 곳에 한국 성도들의 발길이 무수히 몰리게된다. 바로 이런 사연들이 오늘의 설교사역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회중들의 기복위주의 취향에 따라주지 않은 설교자는 외면 당하고 떠나주기를 바라는 지극히 이기주의적인 성도를 양산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바로 이것이 기복사상과 물량주의에 촛점을 두고 목이 쉬도록 외쳐온 설교가들이 맞는 자업자득의 현상이다. 8).설교의 내용과 설교자의 삶에 대한 괘리현상필자가 한국교회의 평신도를 대상으로 하여 연구 조사한바 있는 [설교사역자에 대한 평신도의 의식구조 분석]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바있다. "귀하가 아는 설교자들에 대하여 생각할 때 그들의 설교와 삶의 연관성이 어떠하다고 보십니까?" 여기에 대한 응답자의 80.2%가 "완전치는 못하지만 설교대로 살려고 노력한다."고 응답을 하였고 10.3%는 "설교자는 설교하는 대로 생활한다."라고 대답한 바 있다. 이러한 응답의 비율은 서구교회에 비교하여 월등하게 높은 비율이다. 이것은 바로 이 땅이 유교문화의 영향권에서 오랫동안 정착해온 결과로서 도덕성의 강조와 선비의 고결한 인격성에 대한 높은 기대가 그대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본다. 문제는 오늘의 설교자들이 가장 고결한 성직인 목사로서 자신이 전달한 메시지를 먼저 실천하는 본을 보이고 있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설교자의 대답이다. 여기에 대한 솔직한 대답은 최근에 들어와 대단히 부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사회에서 실종의 위기에 직면한 윤리와 도덕성이 설교사역자들의 삶과 인격에 의하여 살아나지 못한 채 오히려 심각한 탈선이 여기저기서 발생되고 있다. 성전에서의 살인사건, 밀수에 가담한 목사들의 이름, 그리고 외화낭비에 선두주자로서의 목사의 생활, 외국신학교의 분교를 설치하고 박사학위를 남발하는 주범들로서 신문에 그 이름이 오르내리는 현상은 오늘의 설교사역을 가장 멍들게 하는 치욕적인 보도들이다. 설교자가 이 땅에서 풍겨오던 고유한 상은 남다른 것이었다. 일상생활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헌신적이고 검소한 생활의 주인이었으며 풍기는 인격에 있어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고결한 품성과 지식을 소유한 것이 한국의 설교자 상(像)이었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목사는 물질의 풍요를 앞서서 누리는 상류사회의 생활인들로 변화되고 때로는 극소수의 설교자들에 의하여 자신이 외친 메시지와 자신의 삶과 인격과는 무관할 수 있다는 생각을 펼치면서 이 땅의 설교사역을 어둡게 하고있다. 여기서 우리는 한국교회의 설교자들이 "생활하는 집과 말씀의 집"을 따로 지을 때 설교사역에 찾아드는 슬픈 비극적 결과는 실로 엄청날 것이라는데 유의해야 할 것이다. 9). 목회의 수단과 방편이 될 수 없는 설교설교란 기본적으로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설교자 개인의 불편한 심기를 표현하거나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편이 될 수 없다. 설교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감정을 발산하는 무대가 될 수 없고 회중을 선동하여 자신의 개인적인 집단으로 만들 수 없다. 그런데 현대의 소수의 설교자들에 의하여 설교의 본래적인 성격이 퇴색되기 시작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지식과 연구의 결핍을 회중들로 보지 못하게 하는 방법으로서 신비주의를 도입하는 사례를 본다. 방언과 예언의 신비한 현상을 유도하여 그것이 말씀 위에 군림하도록 하는 실수를 범한다. 그것만이 아니다. 자신에게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하여 직접적인 지적을 하면서 때로는 위협을 한다. 그리고 자신의 권위를 절대화하여 심지어는 저주를 행하는 모습을 본다. 이럴 때는 마치 설교자가 하나님으로 둔갑한 모습을 자행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햐 하는 강단은 헌금을 수집하는 무대로 변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을 가리켜 설교가 목회자의 뜻을 펼치는 수단의 방편이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우리의 목회자들의 사회에서는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오고갔었다. 부흥집회를 위하여 강사를 모실 때 특유한 방법으로 헌금을 많이 하게 하는 강사를 초빙을 하면서 수입을 어떻게 분배한다는 약속을 했어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생각하면 얼마나 한국교회의 강단이 철저하게 탈선하고 있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다. 이처럼 우리의 설교가 목회적 수단으로 이용되는 효과적인 이기(利器)로 전락된다면 거기에는 밝은 내일이 있을 수 없다. 오직 어둡고 침울한 장래만이 있을 뿐이다. 언제나 설교는 "은혜의 효율적인 방편으로서 하나님이 정해주신 것"이지 결코 인간적인 욕구를 채우기 위하여 또는 설교자의 정신적 피곤을 풀기 위한 수단이 아니다. 진정한 설교는 "인간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 위에서 죽게 하시고 다시 살리신 구속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생명의 선물을 전하는 것"이다. 10). 설교자의 착각적 과신(過信)의 문제인간이란 자신이 행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일은 일의 진전에 절대적인 요소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일정한 일을 수년을 넘게 계속하면 스스로 진전 시킬수 있는 요령과 기술이 터득되면서 전문인의 세계를 달리게 된다. 그럴 때 누구의 추종도 불허하는 자신의 고유한 영역의 성을 쌓게 된다. 설교사역 역시 이상과 같은 이론을 도입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어느 설교자나 자신의 강단에 설 때 자신이 넘치는 모습을 보이고 유창한 설교를 펼쳐나간다. 그 몸가짐에서 그리고 슬슬 쏟아져 나오는 달변에서 회중은 설교자의 전문성과 그 성스러운 직책에 대한 인정을 한다. 그리고 아멘을 연발하면서 그 설교에 심취되는 경우를 본다. 이런 현상 앞에서 어떤 설교가도 자신의 부족에 대한 인정을 좀처럼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설교자의 설교를 비데오에 담아 설교자 자신이 보도록 할 때마다 거의 모든 설교자가 반응하는 다음의 말은 우리가 깊이 음미해 볼 만하다. "저게 나의 설교인가요? 저 정도의 수준에 불과하던가요? 실망인데요." 이 반응의 응답은 바로 자신의 설교가 자신이 생각했던 수준에 미달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필자가 십 수년이 넘도록 경험해온 설교학 교실에서의 실태는 아무도 자신의 설교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우월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설교자가 없었다. 환언하면 거의 모든 설교자가 착각적 과신의 늪에 빠져서 설교사역을 진행하고 있다는 결론이다. 많은 설교자들이 자신에게 설교향상을 위한 겸허한 노력이 얼마나 시급한지를 모른 채 이어지는 설교를 메꾸면서 달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자신도 모른 사이에 어느덧 자신감이 형성하게 되고 드높은 권위의 의자에 앉아 교주적(敎主的) 자세를 취하게 된다는 슬픈 그림을 그리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자연적으로 스스로를 성공적인 설교자라고 자부하게 되는 교만의 자리를 향하게 된다. 평생을 설교학 교수로 살았던 일리온 죤스(Ilion Jones)는 조각가 도발드슨 (Thorvaldsen)의 말을 연상하면서 "설교자가 자신의 설교에 만족할 때 그는 스스로 내리막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라고 갈파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설교자가 자신은 초보단계를 벗어난 완벽한 설교자라고 자랑할 수 있는 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고 가르치고 있다. 완벽한 설교를 추구하는 설교자는 있으나 완벽한 설교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설교학에서 반복하여 가르치는 말이다. 그런데도 자신의 설교가 최상의 단계에 이른 것 마냥 믿고 더 이상의 발전을 추구하지 않은 착각적 과신의 주인들이 우리의 한국교회에 강단에 너무 많이 서 있음을 볼 때 한국교회의 미래가 지극히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진정 설교의 자만과 교만에 빠져 있는 설교자에게는 성령의 도움이 떠나고 다음의 말씀만 그 귀에 들려줄 것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맺는말: 1960년대 후반에 클라이드 리드(Clyde Reid)에 의하여 설교의 위기 (Empty Pulpit)라는 적은 책이 출판되자 미국의 교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설교자들은 심한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리드는 이 책자를 통하여 지금까지 안일하게 설교의 사역을 감당해 오던 설교자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대담하면서도 솔직한 도전장을 던진 바 있었다. 여기에서 강단이 비어 있다는 말 (empty pulpit)은 목사가 없는 교회 강단을 의미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목사가 강단을 지키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좌석에 앉아 있는 교인들이 말 할 수 없이 허전해 하고, 전혀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며 말씀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심각한 곤경에 부딪쳐 있는 오늘의 강단을 의미한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 전에 미국의 강단을 향하여 있었던 이러한 예리한 지적이 전혀 생소하게 들려지지 않는다. 오히려 오늘 우리의 한국교회 강단을 향하여 직선적으로 들려주는 고마운 지적으로 받아드리고 싶은 충동을 더욱 절실히 느낀다. 그 이유는 위에서 지적한 부끄러운 사연들이 오늘 우리 한국의 강단에서 벌써부터 발생하고 있었으며 지금은 오히려 더 심각한 경지에 이르러 '설교의 몰락' 또는 '설교의 임종'이라는 슬픈 비판들이 등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의 한국교회 설교사역은 아직도 건제(健在)한 면이 없지 아니하다. 선진국의 교회에서 볼 수 없는 설교자의 뜨거운 기도가 있고 생사를 걸고 뛰는 목회의 열심이 있는 한국교회이다. 그리고 아직도 순교의 피가 우리의 바닥을 흐르고 선교의 뜨거운 열기가 쉬지 않은 우리의 교회이다. 어떤 땅에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심취성이 강한 우리의 성도들이 가득하다. 그리고 아직도 앞에서 열거한 설교의 위기요소에 물들지 않은 맑고 귀한 설교자들이 우리의 한국교회를 지탱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는 세계의 교회역사에 특유한 교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얼마동안 왕성했다가 시들어지는 기록을 역사에 남긴 채 그 명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서구교회의 후예가 되기를 거부한다. 세상 끝날까지 부흥만을 지속하는 교회가 되겠다는 이 소박한 소망의 실현을 위하여 이 땅의 목회자들은 자신이 드릴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치면서 땀과 눈물을 오늘도 쏟고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의 향상에 기인한 물질만능의 시대적 부산물이 우리 속에 이미 침투해 왔으며 성직의 탈선적 조짐이 심각하리 만큼 대두되기 시작한다. 이때에 설교는 살아있는 불씨의 역을 감당해야 하는데 함께 탈선을 한다면 이 땅의 교회는 소망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한국강단의 설교가 침몰되기 전에 최소한 이상과 같은 시급한 요소들에 대하여 엄격한 자기진단과 성찰이 있어져야 한다. 그리고 나타난 위기현상들에 대한 시급한 대책이 마련되어져야 할 것이다. 한편, 정장복 총장(한일장신대학교)은 청해진 완도출신이며 고향마을 청산교회의 종지기 소년이었던 그는 신축 건축헌금으로 거액을 헌금하시고 청산교회 건축설계를 건국대교수(경남 외도 건축물 설계자)에게 부탁하여 무료로 설계까지 지원했다.<石泉김용환 발행인, 대표기자>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신문 www.chjnews.kr 입력020100209-16
-
기획- 정장복 교수의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청해진농수산신문 기획] 정장복 교수의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 제 목 :이 시대에 만나고 싶은 목회자 ▲정장복 교수-한일장신대 총장 시작하는 말 시대의 흐름이 험준하면 할수록 등불을 들고 사람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를 아니합니다. 특별히 혼탁한 사회가 다가 올 때 교회가 거룩한 피안처이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이 피안처에서 반겨주는 목회자는 오염된 무리와는 다른 분이기를 바랍니다. 이 기대가 무너지는 날 그분이 운반해주는 진리도 상처를 입게 됩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찬사가 이제는 이 나라 이 민족의 한 복판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한 세기 전에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올 때는 교회마다 우리의 미풍양속을 고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제는 그 소리마저 들리지 아니합니다. 이제는 우리의 아름다웠던 문화도 보이지 않고 인륜이 무너지는 현장의 소리만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옵니다. 마치 엘리뇨 현상이 지구의 기상이변을 일으키고 있는 것처럼 이 땅의 삶의 기준이나 양태도 사정없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누구를 붙들고 내 자신의 헝클어진 몸가짐이나 경건성의 문제를 말해야 할지 그 대상이 보이지 아니한 몹시 어두운 밤입니다. 나의 등불이 어두워서 찾지 못한지 아니면 대상이 없어서 만나지 못한지 혼돈에 빠집니다. 1. 경건한 목사님보다는 [좋디좋은] 사람을 찾습니다. 어느 시인이 다음의 "어떤 戀歌"에서 노래한 주인이 바로 저희들이 찾고 싶은 분입니다. 당신은 언제나 어데서나 만나 봐도 전혀 낯설지 않은 그런 사람입니다 만나면 반갑고 헤어져도 전혀 부담이 없는 그저 좋디좋은 사람입니다 언제나 어디서나 스스럼없이 만날 때도 서로가 궁금한 것이 전혀 없고 또한 헤어지면서 다시 만날 것을 다짐하지 않아도 될 그런 좋디좋은 사람입니다 --중략-- 당신이 싫어 내가 문전박대 할 때도 말없이 돌아서서 갈 줄 아는 사람. 강한 자에게 강하고 약한 자에게 약한 사람, 상한 갈대도 함부로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도 훅 하고 불어버리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사나운 바람을 잠재우고 저 거친 파도를 잔잔케 하는 사람, 별과 달과 태양의 눈을 감게 하는 사랑입니다. 당신은 가난한 詩人인 내 집에 빈손으로 들어와도 괜찮고 가져갈 것이 없어 빈손으로 떠나가도 조금도 아쉬울 것이 없는 사람입니다. 내 영혼이 깊은 잠에 빠져 두꺼운 우수의 커튼을 내리우는 그런 밤에도 창밖에 홀로 서서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그저 좋디좋은 사람입니다. 당신은 너무 높은 곳에 있어 쳐다볼 필요가 없고 또 저 낮은 곳에 있어 내려다 볼 필요가 없는 언제 어디서나 무엇이 되어 만났다 헤어져도 아무렇지 않은 편하디 편한 사람입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내가 알아들을 수 있을 정도의 다정다감한 말씀입니다 당신은 정말 내 영원한 이웃입니다. -程麗成 [어떤 戀歌 I]- 2. 유창한 설교자보다 행동하는 설교자를 찾습니다. 우리는 한 때 강단의 설교자들을 우러러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 말씀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기에 그렇게 크고 자신 있게 외친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설교자를 거룩한 성인으로 존경하였습니다. 그 분과 시선이 부딪히는 것마저 두려워했습니다. 그분이 주신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이 부끄럽기 때문이었고, 그 분이 나의 부끄러운 사연을 모두 아시는 하였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러한 저희들의 이해에는 거대한 변화가 일고 있습니다. 명예를 탐내는 자리에, 물질을 손에 쥐는 자리에, 인생을 즐기는 장소에서 목사님들을 너무 자주, 그리고 너무 많이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때마다 17세기의 영국의 퓨리턴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Richard Boxter가 남긴 다음의 말을 늘 생각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거룩하고 훌륭한 모습을 지닌다면 양떼들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찬양과 교리가 양떼들에게 훌륭하고 달콤하게 나타나면 양떼들은 여러분이 하나님과 함께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나의 심령이 싸늘해지면 나의 설교도 싸늘해지며 나의 심령이 혼돈되면 설교도 혼돈 됩니다‥‥ 내 설교가 냉냉해질 때 내 양떼들이 냉 냉해지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오 형제들이여! 그러므로 먼저 여러분 자신의 마음을 돌보시기 바랍니다. 정욕과 정열과 세상적인 경향으로부터 떠나십시오, 신앙과 사랑의 생활을 유지하십시오‥‥ 하나님과 함께 계십시오. 자신의 마음을 보살피고 부패를 극복하며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해 자신을 매일 보살피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들은 잘못 인도되며 여러분의 양떼들은 굶어 죽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도 남이 알지 못하는 기도와 묵상을 많이 하십시오. 거기에서 여러분의 제물을 태울 수 있는 하늘의 불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한국의 예의범절을 지켜주시는 목사님을 찾습니다. 우리 나라는 동방 예의지국으로서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에서 동방의 한반도에 사는 우리 민족을 일컬어 예의가 바른 민족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이 땅에서 복음을 전하였던 선교사 Gale은 우리 나라가 일본의 속국으로 전락해 갈 때 서술한 그의 글에서도 우리 민족을 이렇게 서술했습니다. "한국 그것은 이제 사라졌는가! 먼 옛날 중국인 마리도 어르신네(Superior man)의 고장이 불렀던 나라, 선비와 책과 붓의 나라, 아름다운 가문의 나라, 시화 수화의 나라, 효자열부의 나라, 하나님을 바라보는 종교적 환상의 나라, 이제 그 나라는 사라졌는가?" 이러한 아름다운 문화권에 태어난 우리의 민족이기에 우리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예의범절을 고수하고 싶어 합니다. 혹자는 한국적 예절에 대하여 거부적 반응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이미 한국인의 심성에 뿌리를 내린 예절 문화는 한국인의 고유한 생활의 중심이 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까닭에 설교자와 인격의 기본 틀은 우리의 문화권과 언제나 상관관계를 깊이 맺고 있습니다. 다음의 몇 가지 항목은 설교자가 가시적으로 우선 갖추어야 할 부분들을 열거한 것입니다. 설교자로서 가장 기초적인 인간 모습을 상실해서는 안 되는 시급한 마음에서 몇 가지 사항들을 추려 봅니다. 이 항목들이 우리의 목사님에게 체질화되어 선포된 메시지에 손상이 가지 않기를 바랍니다. 1) 설교자는 장유유서의 문화를 교회 안팎에서 지키도록 합니다. 특별히 승하차, 문의 출입, 앉은 장소, 음식 상 앞에서 연장자를 우대하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2) 설교자는 Lady First의 현대 문화를 철저히 수용해야 합니다. 한국의 여성들은 교회를 통해서 인간 대우를 받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장 한국여성들에게 가장 고마운 곳입니다. 지금도 남존여비의 언어와 행동이 목사님으로부터 보여질 때 여성들은 참으로 측은한 눈길을 감추지 못합니다. 언어사용, 승하차, 문의 출입, 무거운 짐의 운반 등에서 여성에게 우선적인 태도를 취해 주세요. 그리고 봉사의 현장에서 남자로서 앉아서 받기만 하는 자세가 아니라 함께 수고하는 신사로서의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남자 우월주의에 빠져 여성의 인격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지극히 비문화인의 자세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3) 설교자는 시간엄수를 자신의 인격표현으로 삼아야 합니다. 시간을 지킨다는 것은 사회적인 계약의 이행이다. 그러므로 시간개념에 대한 정확성은 현대사회 에 인격의 기준처럼 여겨지고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지도자로서 시간엄수는 기초상식이며 필수적인 것입니다. 4) 성도들의 사생활에 관여나 전이의 실수를 범하지 않아야 합니다. 설교자는 목회의 장에서 발생된 성도들과의 상담 또는 심방에서 얻어진 어떤 사연도 정중히 경청해야 하나 그 사연들을 아무에게도 옮길 수 없는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5) 언어의 사용을 대폭 축소하고 선별하며 적절한 음정을 사용하여 대화에 임해야 합니다. 한국의 설교자는 가장 많은 말을 계속해야 하는 힘겨운 위치에 있습니다. 반복된 언어와 고정된 단어를 계속 들어야 하는 상대는 때로는 식상해 하고 거부감을 느낍니다. 고로 적은 말수와 선별된 언어의 생활은 필수적입니다. 특히 자신의 주변 이야기에 적절성을 기하는 설교자여야 합니다. 6) 받는 섬김보다는 주는 섬김에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의 목회자는 성도들의 사랑을 너무 쉽게 많이 받는 경우가 빈번합니다. 가급적이면 지나친 정도의 것은 과감히 사양하거나 받아서 이웃을 위하여 사용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 내용이 본인에게 전달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청빈의 의미를 알려주도록 합니다. 그리고 감사의 표현을 위하여 전화 또는 서신을 활용하는 습관을 키워야 합니다. 7) 설교자는 언제나 긍정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인상은 온화하고 평화를 안겨주도록 해야 합니다. 살벌한 현대의 세파에 시달린 성도들은 설교자의 자세와 인상에서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그들에게 긍정적인 삶의 방향을 제시하고 평화를 느낄 수 있도록 해야함은 현대교인들의 일차적인 요구이다. 8) 설교자는 다음의 기본적인 생활의 상식을 필수적으로 지켜야 합니다. ① 연장자 또는 윗사람에게는 자신의 이름 아래 목사 또는 전도사라는 칭호를 사용하지 않습니다. ② 전화 통화시 상대의 신분을 알게 된 즉시 바로 문안의 인사를 먼저 하고 대화를 합니다. ③ 윗사람을 모처럼 만났을 때 "내가 누구인지 기억하시겠어요?" 등등의 질문을 하여 상대에게 부담을 주지 않는다. 언제나 자신을 겸손히 소개하여 자신을 알아보도록 합니다. ④ 음식을 먹거나 차를 마실 때 입으로부터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입에 음식을 넣은 채 말을 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⑤ 잘못을 저질렀으면 겸허히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넉넉한 마음과 자세를 갖춘다. 맺는 말 참 인간이 되고 참 목자가 된다는 것은 칼빈의 교리에 나타난 성화의 세계를 말함에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불신자와는 구별된 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21세기의 험준한 삶의 장이 불과 수년밖에 남지 아니했습니다. 기독교의 지도자들이 이 길에서 일고 있는 파도가 너무 험하다고 주저하면 우리의 교회는 도태되고 터전을 잃게 됩니다. 그러기에 아무리 어려워도 오늘의 주제는 우리의 목회자들이 필연코 달성해야 하는 의무감임을 확인 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국교회 강단의 거성이었던 김화식 목사는 그의 [신앙의 승리]에서 다음과 같이 애절한 호소를 하고 있습니다. 신자의 처세 길은 쉬운 길이 아닙니다. 신자는 산꼭대기를 향하여 올라가는 사람이니, 그 길이 어렵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언덕 아래로 달리는 자이니 그 길이 쉬울 것입니다. 신자는 물결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이니 그 진행이 어렵고, 세상 사람은 물결을 따라서 내려가는 사람들이니 그 진행이 쉽습니다. 끝으로 본 발표자는 스스로 걸어오면서 경험한 사연들을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지 못한 체 하나의 희망사항으로 본 강의를 이어가게 되었음을 거듭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바라옵기는 앞으로 주어진 날을 맞이하면서 여러 목사님들과 함께 오늘 발표된 내용들을 혼신을 다하여 수행하려는 의지를 더욱 다짐해 봅니다. 역시 드라이든(Dryden)이 남긴 "인생의 추구는 인생이 새로워질 때까지 무엇인가로 희망을 갖게 한다"라는 말이 실감이 납니다. 모자람과 부끄러움에 대한 깊은 고뇌의 관문을 통과할 때 [참 사람 참 신자]에 대한 의미가 더욱 저에게도 뚜렷해지리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지난 15년간의 강의실 안팎에서 감당해 온 강의 가운데 오늘처럼 자책과 부끄러움에 젖어 진행해온 강의가 없었음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 시간 이후 어디서 우리가 서로 만나더라도 반듯이 하나 고려해 주셔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의 발표 내용과 저의 삶의 내용과 행동이 차이가 난 것을 발견하시더라도 너무 실망이나 책망을 말아주시고 고민하는 실천신학자의 고뇌를 함께 읽어 주시면 진심으로 감사하겠습니다. 여기 기독교 시인이시고 원로 목사님이신 오병수 목사님의 [마음의 화원]을 결론으로 읽어 드립니다. 꽃보다 열매가 더 아름다운 마음의 화원 피어라 곱게 피어라 맑은 눈물 붉은 피의 사랑의 꽃 순정의 꽃 진실의 꽃 바람이 불면 불수록 눈보라 치면 칠수록 더 화려해지는 마음의 화원 칼날에도 뿌리를 박고 층암 절벽에도 거친 광야에도 깊은 산골짜기에도 피어라 (중략) 인생아 아느냐 꽃보다 열매가 더 아름다운 마음의 화원 언제나 생명과 익는 마음의 화원을 장시간 경청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2001년12월01일 사이버설교대학원 예배와 설교 아카데미에서 “이 시대에 만나고 싶은 목회자” 라는 제목으로 강의한 정장복 교수(목사)는 청해진 완도(청산도)출신으로 한남대학교 문리대 영문학과(B. A.), 장로회 신학 대학교(B. D.), Columbia Theological Seminary(Th. M.),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S. T. D.), San Francisco Theological Seminary 객원 교수, Edinburgh 대학교 연구 교수, 장로회 신학 대학교 교수(역임, 예배학, 설교학)를 역임하고 현재 한일장신대학교 총장으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목회자 양성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을 바르게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선포하는데 사마리아 땅끝까지 뭇 영혼들을 찾아 님의 품으로 이끌게 하는 거룩한 사역을 이 몸이 평생 동안 걸어야 할 사명의 길로 명령하시었나이다.하는 기도를 드리는 정교수님은 가고 싶은 섬 청산도 고향마을의 청산교회(전남 완도군 청산면 도청리 소재)신축을 위한 건축헌금으로 거액을 기부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훈훈한 감동을 주고 있다. 한편, 정장복 교수님의 기도가 [님 기리는 아침과 저녁의 창]이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어 극동송의[신앙서적 길라잡이]에 소개된 바 있으며 지금 절찬리에 각 서점에서 판매중이다.<石泉 김용환발행인, 대표기자> 새감각 바른언론-청해진농수산신문 www.chjnews.kr 입력:100126-0201